그러자 랍비는 그럴 리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아니, 로마의 공주님이 어찌 그리 보잘것없는 항아리 따위를 쓰신단 말입니까? 공주님처럼 훌륭한 분은 금이나 은으로 된 그릇을 쓰셔야 하는 것 아닌가요?"
랍비의 말에 자존심이 상한 공주는 자신의 격에 걸맞게 술도 비싸고 화려한 그릇에 넣어 둬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당장 항아리의 술을 모두 로마 최고의 그릇에 담도록 해라!"
하인들은 공주의 명령대로 궁에서 제일 좋은 금 그릇과 은그릇에 술을 옮겨 담았습니다. 며칠 후 식사를 하던 로마의 왕이 불같이 호통을 질렀습니다.
"술 맛이 왜 이러느냐. 도저히 마실 수가 없구나!"
로마 최고의 맛을 자랑하던 왕궁의 술 맛이 사약보다 더 쓰고 역겹게 변해 있었습니다. 술이 금 그릇과 은그릇에 담겨 있는 것을 발견한 로마의 왕은 언성을 높이며 말했습니다.
"대체 누가 술을 이런 그릇에 담아놨단 말이냐?"
"로마 최고의 술인 만큼 최고의 그릇에 담아야 할 것 같아 제가 옮겨 담으라고 했습니다."
로마의 왕은 궁 안의 술을 모두 못 쓰게 만든 공주를 몹시 꾸짖었습니다. 혼이 나는 내내 랍비를 원망하던 공주는 득달같이 랍비에게 달려갔습니다.
"랍비님! 왜 저에게 술을 옮겨 담으라고 하셨죠? 술 맛이 변할 것을 미리 아신 거죠? 대체 왜 그러신 거예요?"
랍비는 차분하게 대답했습니다.
"공주님, 저는 단지 아무리 귀한 것이라도 때로는 하찮아 보이는 그릇에 두는 것이 좋다는 것을 말씀드리고자 했을 뿐입니다. 외모가 형편없다 하더라도 그 안에는 로마 최고의 지혜가 담겨 있을 수도 있기에 함부로 비웃어서는 안 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