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진 가방엔 청진기 대신 확대경과 망치… 나무 100만 그루 살린 '금손'
강 원장은 일주일에 2~3일씩 지방으로 출장 진료를 간다. 왕진 가방은 묵직하다. 그 속에 망치·끌개·조각칼·모종삽·전지가위 등 진료에 필요한 도구가 한가득이다. 청진기 대신 꼭 챙기는 물건도 있다. 손때가 묻어 칠이 벗겨진 '루페'다. 루페는 볼록렌즈가 달린 확대경으로, 10~20배율로 나무를 들여다볼 수 있다. 시료를 담을 지퍼백도 여러 개 준비한다.
나무를 치료하는 과정은 사람과 똑같다. 어디가 아픈지부터 찾아내야 한다. "나무가 앓는 병의 종류는 2000가지가 훌쩍 넘어요.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간단히 약만 투여해도 되는지, 외과수술이 필요한지 판단이 서죠. 그래서 꼭 현장에 가봐야 합니다."
강 원장에 따르면 나무도 사람처럼 감기를 앓는다. 이때는 약제를 뿌리거나 주사를 놓는 처방을 한다. 영양실조로 고생하는 나무에는 질소·인산·마그네슘 등이 섞인 영양제를 놓기도 한다. 증세가 심할 때는 환부를 긁어내는 외과수술이 진행된다. 40년 동안 그의 손을 거쳐 건강을 되찾은 나무는 지금까지 100만 그루가 넘는다.
"1988년의 일이에요. 문화재청에서 연락이 왔어요. 쇠약해져 가는 정이품송(천연기념물 제103호)을 진단하고 치료해달라고요. 다음 날 당장 충북 보은으로 내려가 보니까 뿌리가 절반이나 썩어 있더라고요. 나무 주변에 잔디를 깔아 놓은 게 화근이었어요. 그렇게 하면 나무가 숨을 쉴 수 없거든요."
그는 잔디를 제거하고, 시커멓게 썩어버린 부분을 도려내는 수술을 진행했다. 또 솔잎을 시들게 하는 솔잎혹파리 피해를 막기 위해 산란 시기인 5~7월 석 달간 나무 전체에 방충망을 씌우기도 했다. 가까스로 죽을 고비를 넘긴 정이품송은 지금까지 튼튼하다.
이 외에도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나무인 '이천 용문사 은행나무'와 '순천 송광사 천자암 쌍향수' '경주 독락당 조각자나무' 등 숱한 천연기념물들이 강 원장 덕분에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