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2/18 15:17:58
진짜로 사교육을 안 시키나요?
진짜 안 합니다.(웃음) 교과목 관련 사교육은 전혀 안 시키고 방과후교실에만 보내요. 태권도도 배우고 서예도 배웁니다.
사교육 중단 결정을 내린 이유가 인구를 통해 이미 ‘정해진 미래’를 내다봤기 때문이라고요.
미래를 보려면 인구의 변동을 봐야 합니다. 10~20년 후를 예측하는 데 인구만큼 정확한 툴이 없어요. 가까운 미래에 태어나는 사람과 사망하는 사람 수는 어느 정도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1972년생인 제가 태어났을 때 한 해 100만 명이 태어났어요. 저희 첫째 아이가 태어난 2002년에는 48만 명이 태어났고, 작년에는 40만 명이 태어났습니다. 한 세대 만에 절반이 줄어든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해요. 앞으로 10년 안에 수많은 대학이 도산 위기에 처합니다. 학생들이 적어서 정원을 채우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2015년 대학입학 정원이 52만 명이고 수험생은 64만 명이었습니다. 2001년생까지는 대학 정원보다 대학에 들어가고자 하는 학생 수가 훨씬 많아요. 그런데 이게 불과 1년 후 뒤집어집니다. 올해 중3이 되는 2002년생들이 대학에 가는 2021년에는 모든 수험생이 4년제 대학에 무리 없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전국에 있는 대학들이 구조조정을 할 테고 정원도 줄어들 텐데요?
초·중·고교는 나라에서 운영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유지를 해나가지만 대학은 학생들에게 등록금을 받아 운영됩니다. 학생 수가 적으면 무너지게 되어 있죠. 당연히 지방 사립대부터 도산하기 시작합니다. 4년 후에는 지금 대학에 가는 아이들의 3분의 1이 줄어듭니다. 전에는 서울에 있는 대학에 들어가려면 사교육도 하고 외국에도 갔다 오고 그랬지만 그러지 않아도 갈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 겁니다. 저희 아내도 충청권 대학의 간호학과 교수인데 기본적으로 하는 일이 뭐냐면 고등학교 가서 학생들 데려오고, 또 합격한 아이들에게 다른 데 가지 말고 여기로 와달라고 전화하는 겁니다. 4년 후에는 더 심각한 일이 벌어지겠지요.
그래도 서울의 4년제 대학이나 명문대의 경우 여전히 경쟁률이 높을 텐데요. 아내가 아이들 사교육 끊는 것을 반대하지는 않았나요?
엄청난 반대가 있었죠. 아내는 물론이고 부모님도 강력하게 반대하셨어요. 불안하니까요. “그래, 네 말이 맞는 것 같기는 하지만 옆집 아이는 하는데 안 할 수 있느냐. 공부라는 건 해야만 하는 건데” 그러셨죠. 저도 공부는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공부는 학교에서 하면 됩니다. 아이가 자기계발을 위해 사교육을 받고 싶어 한다면 시켜야죠. 하지만 지금의 사교육은 대학을 가기 위한 것이지 자기계발을 위한 것이 아니잖아요. 70%의 학생이 대학에 갑니다. 그런데 좋은 대학을 나와도 좋은 직장에 가지 못합니다. 학력만으로는 희소성도 없고 경쟁력이 되지 못하는 거예요. 아이가 너무 똘똘해서 공부로 무언가가 되겠다는 게 아니라면 사교육으로 억지로 성적을 올려서 대학에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교육에 들일 돈을 부부의 노후자금으로 쓰는 게 훨씬 낫다고도 했습니다.
돈에는 제한이 있으니 아이들 사교육에 쓰려면 생활비를 줄이거나 노후자금을 줄여야 하잖아요. 저희 부부는 둘 다 교수니까 사학연금으로 살면 되지 싶죠. 그런데 사학연금이 연금 중 가장 먼저 없어질 거예요. 대학이 어려워지면서 교직원들을 자르거나 대학이 아예 없어질 테고, 그러면 사학연금을 내는 사람이 갑자기 확 줄어들 테니까요. 저는 저와 제 아내가 퇴직할 때까지 사학연금이 유지될 가능성이 없다고 보고 있어요. 그런데 한 달 수입의 3분의 1을 아이한테 쓰고 나면 저는 노후자금도 없는 바보가 되는 거예요. 그렇다고 애가 졸업하면 잘되느냐. 아무것도 없잖아요. 맹목적으로 애한테 들이기보다는 그걸 세이브해서 나중에 아이에게 주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어요. 아내한테 농담처럼 차가 오래됐으니 사교육 시킬 돈으로 차를 바꿔주겠다고 하니까 “그건 오케이” 그러더라고요.(웃음) 차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자녀한테 쓰느냐 나한테 쓰느냐’예요. 자녀를 통해 나에게 돌아와야 하는데 그럴 가능성이 없다는 겁니다.
두 딸에게 농업고등학교 진학을 권해 화제가 된 바 있습니다.
저는 아이들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길 바랍니다. 그런데 제가 현실적인 사람이라 아이들이 잘 살기를 바라기 때문에 농고 얘기가 나온 거예요. 좋은 직업의 기준은 희소성, 전문성, 안정성입니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존중받고 존경받는 것이 중요하죠.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농사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과학입니다. 인공지능이 가장 많은 역할을 해줄 수 있는 부분도 농업이에요. 전체 인구의 87%가 도시에 살고 있고, 농촌 평균연령이 60세를 넘겼어요. 전문성이 있을 뿐 아니라 젊은 사람이 아주 희소한 분야죠. 땅과 일찍부터 가까이 지내며 땅을 알아가면 좋겠다 싶어서 농업 관련 마이스터고등학교를 추천한 겁니다. 앞으로는 명문대학에서 이런 식으로 자신의 전문 영역을 가진 아이들을 선호할 가능성이 커요. 그리고 이미 많은 국내 대기업들이 농업에 진출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최근 집필하신 책 <정해진 미래>를 보니 의사, 변호사, 교사, 교수는 더 이상 유망 직업이 아니더라고요.
중학생인 큰딸의 가정통신문을 보니 한 반에 학생이 20명이었습니다. 교사가 남아 학급마다 담임과 부담임을 함께 두고 있어요. 교사는 큰 결격사유가 없는 한 62세 은퇴까지 정년이 보장되기 때문에 학생 수가 적어 학교가 없어진다고 해도 교사의 퇴직을 종용할 수 없죠. 전국 사범대학과 일반대학 교직과정을 통해 매년 2만4천여 명이 중등교사 자격증을 받습니다. 그런데 2015년 선발된 중등교원은 4천4백 명입니다. 도산 위기에 놓여 있는 대학이 교수 일자리를 늘릴 리도 없지요. 은퇴가 없는 직종인 의사와 변호사는 종사자 수가 계속 증가할 테니 희소성이 떨어집니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의 발달로 전문성도 축소될 테고, 경쟁이 심화되면서 안정성도 떨어지겠지요.
앞으로 전망이 좋은 직업군도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새로운 직업군이 많이 나올 겁니다. 사실 저도 어떤 직종이 뜰지는 알 수 없어요. 어떤 직업이 생길지 모르니까요. 대신 융합적인 사고가 필요하리라는 건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저희 학교의 경우에도 예전에는 학생들에게 지도교수의 수업만 듣게 하고 졸업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보건대학원 학생들도 산업공학, 컴퓨터공학, 사회과학 수업을 듣게 합니다. 융합적 사고가 필요하기 때문이지요. 그게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입니다. 저도 딸아이에게 교과서만 볼 필요는 없다고 말합니다. 구글에 들어가서 마음껏 놀라고 이야기하죠. 빅데이터 시대에 암기식 교육은 답이 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