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인구수는 정확한 자료가 남아 있지 않지만 사료를 통해 추정해 볼 수 있다. 전덕재 단국대 사학과 교수는 "인구를 추정한 관련 기록에 서로 차이가 있을 수 있다"며 "당시엔 근대적 인구 집계 방법이 없었으므로 정확도가 떨어지는 게 당연하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인구 관련 최초 기록은 BC 1세기에 지어진 중국 역사서 '한서지리지(漢書地理志)'다. 이 책에 따르면 당시 고조선 중심부였던 낙랑 지역에 6만2812호 가구가 살았으며, 인구수는 40만6748명이었다.
고구려, 백제, 신라로 나뉜 삼국시대에는 잦은 전쟁으로 인구 변화가 빈번했다. 인구수의 증감은 주로 전쟁 직후 승패에 따라 포로가 돼 끌려가거나 포로를 잡아오는 과정에서 이뤄졌다. 삼국유사(고려시대 승려 일연〈1206~1289년〉이 쓴 삼국시대 관련 역사책)에 따르면 5~6세기 우리나라 영토에 살던 인구수는 고구려 69만 호·백제 76만 호·신라 17만 호 등을 감안할 때 총 380만 명가량이었다.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 초기까지는 별다른 인구 변화가 없었다. 조선 초기 인구수는 약 550만 명가량. 하지만 200년 후인 16세기를 전후해 농업 기술의 발달로 인구는 1000만 명을 돌파하며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였다.
인구 증가는 17세기 무렵 한 차례 부침을 겪기도 했다. 1170만 명까지 늘었던 인구는 임진왜란(1592~1598년)과 병자호란(1636~1637년)의 영향으로 1090만 명으로 줄어들었다. 전쟁으로 인한 질병과 기근으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한국전쟁 직후 '베이비 붐' 현상으로 인구 급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