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다양한 사연을 가진 재학생을 둔 대학이 또 있을까. 국립 한국방송통신대학교(이하 방송대) 얘기다. 방송대는 지난 1972년 고등 교육 기회를 넓히기 위해 정부가 설립한 국내 최초 원격 대학이다. 당시만 해도 대졸 이상 학력자가 10%에 못 미치던 시절이었다. 고교 졸업 후 가족 생계를 책임지느라 진학을 포기하고 일과 가정을 택했던 이들이 뒤늦게 방송대에서 학위를 거머쥐었다. 이제 방송대 졸업생은 63만1634명(2016년 4월 1일 기준)에 달한다. 제20대 국회의원 중에 방송대 출신이 24명이고, 2016년 1학기 신·편입생 중 서울·연세대·고려대 출신만 1000여 명이다. 김외숙 방송대 총장 직무대리는 "삶이 다변화하면서 사람들이 직무 역량 강화·제2의 인생 설계·취미 등 다양한 이유로 방송대를 택하고 있다. 기술 발달로 강의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졌고 경쟁력도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모바일·TV·인터넷 수강 '편리'
"1990년대만 해도 방송대 재학생들은 강의가 녹음된 카세트테이프와 교재로 공부했습니다. 주로 혼자 공부하는 경우가 많아 학업 의지를 오랜 기간 유지하기 어려운 데다 학사제도도 엄격해 중도 포기자가 많았죠." 김 총장 직무대리의 말은 이제 옛날 얘기가 됐다. 방송대는 지금 무섭게 달라지고 있다.
최근 방송대는 시·공간 제약 없이 온·오프라인 수업을 병행하는 블렌디드 러닝(Blended Learning)을 적극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모바일 캠퍼스인 'U-KNOU+(유노우플러스)'를 구축한 것이 그 예다. "스마트폰으로 다운받은 U-KNOU+ 앱으로 모든 강의를 수강하고 학사 정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16년 3월 기준으로 5만4700여 명이 이 시스템을 이용하고 있고요." TV·PC로도 수업을 들을 수 있다. 서울대·카이스트 등 출신의 교수진이 제작한 질(質) 높은 콘텐츠를 자체 방송국(방송대 TV OUN)에서 제공한다. 이로써 방송대 학생들은 700여 개 과목 1만4000여 개 강의를 편리하게 보고 들을 수 있게 됐다. "이런 시스템들은 전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수준입니다. 각국에서 우리 대학 시스템을 배우려고 찾아옵니다."
오프라인 인프라도 곳곳에 구축했다. 전국 48개 캠퍼스 인프라를 완비해 필요한 경우 대면 교육을 진행하고 도서관·전산실·스터디룸·동아리방 등 학생 활동 공간을 제공한다. 이곳에서 1800여 개의 스터디 그룹이 공부하고 인적 네트워크를 넓힌다. 학생 편의를 위해 개편한 학사제도도 눈에 띈다. "일과 학업을 병행하느라 부득이하게 시험을 보지 못하는 학생을 위해 온라인으로 중간고사를 진행하거나 온라인 과제물로 시험을 대체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졸업생이 '우리 때는 고군분투하며 공부했는데 이렇게 시설과 제도가 좋아졌느냐'며 억울해할 정도죠."
학업 방식이 편리해지면서 방송대 인기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 (2016년 4월 1일 기준) 현재 재학생은 12만1560명에 이른다. 일부 학과는 신·편입생 선발 시 치열한 경쟁을 치러야 한다. 전통적으로 낮게 책정해온 학비도 경제가 어려운 요즘 강점으로 통한다. 한 학기 기준으로 인문·사회계열이 35만원, 자연·교육계 37만원 내외다. 김 총장 직무대리는 "학비 부담이 적어 매년 6000명 이상의 졸업생이 다른 학과로 재입학을 하고 있다. 학위가 7개나 되는 졸업생도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