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걸고 도로 횡단… 고라니의 눈물
"어제도 쫄쫄 굶었어. 이 길을 건너야만 해."
어젯밤 옆집 고라니는 이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어요. 4차선 도로 건너편에 먹이를 구하러 떠났다가 그만…. 그 친구도 저처럼 두 딸을 둔 엄마였어요. 최근 들어 날씨가 추워지면서 겨우 한 살배기인 자식들이 배를 곯을까 봐 걱정이 많더라고요. 우리는 나뭇가지 끝에 자란 연한 잎만 주로 먹는 초식동물이라 겨울에 먹이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거든요. 산을 넘어 옆 동네까지 다녀올 때가 많아요.
이번 사고는 최근에 새로 생긴 도로가 화근이었어요. 늘 지나다니던 길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자동차가 쌩쌩 다니는 도로가 들어섰어요. 신호등도 없어 가뜩이나 겁 많은 우리 고라니들에겐 '저승길'로 불려요. 평소 작은 움직임에도 깜짝 놀라 펄쩍 뛰는데 오죽 무섭겠어요.
하지만 엄마는 강하잖아요. 자식들을 위해 목숨 걸고 뛰어들곤 해요. 옆집 고라니처럼 길을 건너다 죽은 친구들이 한 해 2만여 마리나 된다고 해요.
◇동물들의 생명길 '생태통로'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사람들이 1998년부터 '생태통로'란 걸 만들고 있다는 거예요. 자기네들 이익만 생각하는 줄 알고 그동안 많이 미워했는데…. 그래도 우리를 배려하는 마음이 있긴 한가 봐요?
국내 첫 생태통로는 지리산 시암재에 만들어졌어요. 이곳은 제 고향이기도 한데요.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 일이라고 하니 정말 까마득하네요.
저도 그 생태통로를 몇 번 지나가 봤어요. 도로 아래로 난 길을 따라가면 터널처럼 생긴 공간을 지나 건너편 산까지 안전하게 갈 수 있어요. 안타깝게도 이사 온 지 얼마 안 된 친구들은 생태통로가 있는지 모르고 굳이 길을 건너다 변을 당하기도 했어요. 앞으로 입주자들에게 꼭 귀띔해줘야겠어요.
다른 동네엔 육교 모양으로 만든 생태통로도 있대요. 그 위에 흙을 덮고 나무를 심어 산길처럼 꾸몄다던데요? 전국적으로 따지면 육교형(257개)이 터널형(189개)보다 많다고 해요. 과속방지턱처럼 생긴 양서·파충류용 생태통로(26개)와 다람쥐·청설모를 위해 나무 사이를 잇는 소규모 이동 통로도 있대요.
◇동물들이 못 찾는 생태통로… 관리 필요
여기서 잠깐! 생태통로는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부쩍 늘었는데 왜 로드킬은 줄어들지 않을까요? 답답한 마음에 동물 친구들과 의견을 나눴어요. 몇 가지 문제점이 발견되더라고요. 생태통로의 존재를 아예 모르거나 생태통로를 위험한 장소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실제 우리 가족도 새끼 고라니만 지날 정도로 입구가 좁은 터널이나, 사람이 다닌 흔적이 발견된 길은 이용하지 않아요.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컴컴한 터널의 경우에는 아이들이 특히 무서워하더라고요. 알고 보니 다 생태통로였다네요? 지난해에는 한 생태통로 끝에 바로 급경사가 이어져 다리를 다치기도 했어요. 다시는 그곳에 가지 않아요. 생태통로 하나를 만드는 데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수십억원이 든다는데…. 큰돈이 드는 만큼 꼼꼼히 따져 짓고, 또 관리해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어린이 여러분에게 부탁할 게 하나 있어요. 부모님한테 운전 중에 야생동물을 보게 되면 전조등을 끄고 경적을 울려달라고 말씀 좀 전해줄래요? 동물들은 강한 불빛을 보면 몹시 당황해 그대로 서 있다가 사고를 당하거든요. 우리 앞으로 도로 위에선 만나지 말아요(웃음)!
생태통로의 종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