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원 관장은 인터뷰 내내 자신이 발굴한 매머드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특이하게도 그가 이야기하는 단어 속에는 일본어가 많이 섞여 있었다. 사실 박 관장은 일본에서 태어나 자란 재일교포다. 그의 부친이 1930년 대한해협을 건너 일본으로 가 자리를 잡은 후 그가 태어났다. "일본 나가노현 조선인 마을에서 자랐지요. 몸은 고국을 떠나 타향에 살고 있었지만, 아버지나 할아버지는 늘 우리 민족에 대한 긍지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우리 말과 우리 글을 배우며 늘 한국을 생각하곤 했어요."
어린 시절 박 관장은 놀기 좋아하는 여느 소년과 다르지 않았다. 단 책 읽는 것 하나만은 누구보다 남달랐다. 그는 그 과정에 자신의 꿈을 찾았다고 했다. "어렸을 때 정말 책을 많이 읽었어요. 그중 아프리카코끼리를 다룬 소설이 있었는데, 그 내용이 너무 감동적이었어요. '기회가 된다면 고대 생물을 꼭 찾으러 떠나보자'고 결심한 계기가 됐죠."
그 후 30년간 그는 꿈을 잊고 지냈다. 어릴 적 꿈꿨던 이상과 현실이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경제학을 전공한 박 관장은 부동산 사업을 하며 평범한 삶을 살았다. 그러던 중 우연히 본 다큐멘터리 하나가 그의 어릴 적 꿈을 다시 일깨웠다. 그의 나이 마흔 때다. "텔레비전에서 '매머드의 묘지'란 다큐멘터리를 하더군요. 눈을 뗄 수가 없었어요. 그제야 옛 꿈이 생각났어요. 지금 아니면 고대 생물을 찾기 어려울 것 같다고 생각해서 무작정 방송국에 갔어요. 어딜 가면 털매머드를 발굴할 수 있는지 물었죠."
1994년 박희원 관장은 우여곡절 끝에 러시아 국립과학아카데미 매머드위원회 정회원이 됐다. 그는 "매머드가 묻혀 있는 시베리아에서 발굴 조사를 하려면 꽤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했다"면서 "운이 좋게도 소련(현 러시아)이 무너지면서 그 과정이 한결 수월해졌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발굴 작업에 필요한 모든 준비를 끝마친 박 관장은 자비를 들여 팀을 꾸렸다. 러시아동물학연구소, 도쿄대, 모스크바대 소속 연구자 등 20여 명이 그의 발굴 작업을 도왔다. "허리까지 올라오는 장화를 신고 하루 13~14시간씩 표본을 찾아다녔어요. 매머드의 뼈나 흔적을 발견할 때마다 만세를 불렀어요. 오랜 제 꿈이 이뤄지는 순간이 정말 행복했습니다. 이 행복도 잠시뿐이었어요. 2㎞ 떨어진 베이스캠프까지 이 표본을 옮기는 게 문제였죠. 어찌나 무거웠던지…. 그래도 저는 발굴단장이라서 가장 가벼운 걸 들었답니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