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학 온 한국 학생들 토론 수업에 '당황'
이 학교에서 다음달 졸업을 앞둔 12학년 학생들은 지난해보다 입시 실적이 향상됐다. 펜실베이니아대· 조지워싱턴대·뉴욕대·보스턴대·줄리아드·홍콩과기대 등 명문대로부터 합격증을 받았다. 특히 올해는 미술 분야 실적이 두드러져 디자인 명문인 파슨스 합격생을 5명 배출했다. 한국 학생들도 카네기멜런대·일리노이대·UC어바인 등에 합격했다. 이는 중국·인도 등지의 실력 있는 지원자들의 등장으로 전체 명문대 합격률이 하락하는 최근 추세와 대조된다.
브라이언 마호니(Brian Mahoney) 교장은 "학생들이 저마다 개성을 발견하고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게끔 토론·독서·클럽 활동에 충분히 도전하도록 하고 있다"고 했다. 이를 위해 학교가 도입해 운용 중인 학제는 국제 공통 고교 학위 과정인 IB 디플로마(International Baccalaureate Diploma)다. 이 학교 학생들은 대부분 10학년을 마친 뒤 11학년부터 2년간 IB 디플로마를 이수한다. IB 디플로마는 스위스 IBO재단 주관 하에 엄격한 심사를 거친 학교만 도입할 수 있는 데다 각 수업이 대학교 1학년 수준으로 구성돼 학업량이 만만치 않다.
11시 10분부터 207호 교실에서 아담 보본(Adam Bovone) 교사의 수학 수업이 시작됐다. 한국으로 치면 적분 단원을 다뤘다. 지리학과 마찬가지로 IB 디플로마의 상위 레벨 수업이었다. 교사가 문제를 내면 자원한 학생 혹은 지명된 학생이 칠판에 문제를 풀었다. 숫자와 그래프가 화이트보드를 까맣게 채워 나갔다. 이미 답을 낸 문제를 놓고 "다른 방법으로도 풀 수 있다"며 스스로 나서 발표하는 인도계 여학생의 행동이 '많이 해본 듯' 자연스러워 보였다.
수업을 함께 참관하던 EF국제사립학교 한국 입학처의 최지우 실장이 귀엣말을 했다. "한국 학교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죠? 일방적인 강의식이 아니라 토론식 수업이라 학생 참여도가 높아요. 대부분 수업에서 교사 대 학생 비율이 1대15를 넘지 않아 가능한 방식입니다. 수업을 못 따라갈 경우엔 주말에 보충 수업을 받을 수 있어요. 한국에서 수학을 포기했던 일명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자)'가 여기 와서 자신감을 되찾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IB 디플로마 필수 과정인 모국어 수업을 맡아 한국 문학을 강의하는 소피아 김(Sophia Kim) 교사는 "한국 학생들이 처음 이곳에 오면 강의식으로 진행되던 기존 교육 방식과 달리 학기 내내 토론과 에세이를 요구하는 방식에 일차적으로 당황한다"고 했다. "그런 과정은 깊은 통찰력과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부담을 갖기도 해요. 그러나 몇주가 지나면 아이들의 사고력이 믿을 수 없이 확장됩니다. 가르치는 입장에서 감동할 정도예요." 한국 학생을 상담하고 지도하는 소피아 박(Sophia Pak) 교사도 "초반엔 전문 용어를 쓰는 과학과 비즈니스 과목에 어려움을 느끼지만 성실하게 공부해 영어 실력을 높이고 나면 교과 내용을 곧잘 이해하고 변화에 적응해나간다. 아이들은 빨리 변한다"고 했다.
◇도전 정신 기르는 다양한 활동현재 뉴욕 캠퍼스에는 총 40명의 한국 학생이 재학 중이다. 이들의 평균 SAT 점수는 2044점(2400점 만점)으로, 미국 전체 평균인 1497점보다 547점이나 높다(2015년 기준). 미국 고교 전체에서 SAT 평균이 가장 높은 학교인 초우트 로즈메리 홀(Choate Rosemary Hall)이 기록한 2025점보다도 19점 높다. 드루 그라누치(Drew Granucci) 대입 상담 전문 교사는 "대부분 한국 학생들은 SAT 점수가 우수한 편이라, 이들에게 더 중요한 건 사실 교과 외 활동"이라고 했다.
아시아 학생들은 내성적인 경우가 많아 대외 활동이 활발하지 않은 편이다. IB 디플로마는 비교과를 다루는 CAS(Creativity·Action·Service)를 필수 과목으로 정해 학생들이 반드시 클럽 활동을 하도록 한다.
에밀리 아퀴나(Emily Aquina) 액티비티 전담 교사는 "봉사·모의 UN·체스·크로스컨트리·트랙·댄스 등 45개 이상의 공식 클럽이 개설돼 있다. 10명 이상이 요청하면 언제 어떤 종목이든 클럽을 만들 수 있어 매 학기 숫자가 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리더십을 기르고 경험 폭을 넓히며 도전 정신을 길러주는 데 클럽 활동만 한 게 없다. 명문대에 도전하려는 학생들은 비교과 활동을 통해 향후 전공할 분야에 깊이 파고들기도 한다. 이 때문에 학교는 기기 구입비나 대회 참가비를 지원하는 등 대외 활동을 적극적으로 권장한다"고 말했다. 11학년에 재학 중인 박성훈군은 "영화 제작 동아리에서 활동하던 중 촬영 기기가 필요했는데, 수백 달러나 되는 기기 대여 비용을 학교가 선뜻 지원해줘 놀랐다"고 말했다.
뉴욕 태생이면서 IB 디플로마와 다국적 경험을 위해 이 보딩스쿨을 선택했다는 12학년 가브리엘라 로사티(Gabriela Rosati)양은 "드라마 클럽에 참여하면서 영화 제작과 연기를 배우고 있다. 공부와의 균형을 맞춰가는 과정에서 자제력을 익히고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했다.
이 같은 과정을 거쳐 IB 디플로마를 이수했다는 기록은 명문대가 요구하는 학습력을 지녔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마호니 교장은 "최근 세계 2000여 개 대학이 IB 디플로마 이수 여부를 신입생 선발에 반영하고 있다. IB 디플로마를 도입한 학교에 다닌다는 것 자체가 대입에서 가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IBO에 따르면 IB 디플로마를 이수한 학생의 대학 합격률이 이수하지 않은 학생에 비해 평균 22%포인트나 더 높다. 코넬대의 경우 일반 학생들의 합격률은 18%였으나 IB 디플로마를 이수한 학생의 합격률은 31%나 됐다. 올해 카네기멜런대에 합격한 도예원(12학년)양은 "IB 디플로마가 있는 미국 학교에 다녔다는 점이 학생 능력을 신뢰하는 요소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