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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상의 입시 속 의미 찾기] 외로움 고통 없이 그 어떤 꿈도 이룰 수 없다

2016/03/28 18:15:07

문 : 이번에 책을 번역 출판하셨는데요. 어떤 책인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답: 이번에 기획⋅번역한 책은 ‘친구지옥’ 인데요. 10대 중·고등학생들과 20대 대학생 및 사회 초년생 등 일본 젊은 세대들에게 나타나는 인간관계와 커뮤니케이션에서의 중압감과 그 생존 과정에서 나타나는 고통스런 삶의 내적 실체를 ‘친절한 관계’를 키워드로 삼아 심도 있게 분석한 책입니다. 이지메라는 지뢰를 밟지 않고자 눈치를 보는 교우관계, 자살소녀들의 계보를 통해 파악한 젊은 세대의 변화된 내면 풍경, 웹 소설로 나타나는 젊은 세대의 ‘순수’에 대한 기대심리, 그것이 좌절되어 사회로부터 자신을 격리하는 은둔형 외톨이들의 생활, 타인 속 자기가치의 확인수단이 된 휴대전화, 가상과 현실이 뒤바뀐 인터넷 커뮤니케이션의 심리적 메커니즘 등 일본의 젊은 세대가 주로 활동하는 온·오프라인에서 나타나는 사회적인 문제현상과 그 원인들을 ‘친절한 관계’라는 개념을 키워드로 분석함으로써 삶의 고통에 대응하는 그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 : 저자에 대해서 잘 모르는 국내 독자를 위해서 소개 부탁드립니다.
답: 저자인 도이 다카요시(土井隆義)는 현재 쓰쿠바(筑波)대 교수로, 과거의 비행소년에 의한 일탈 행동과는 구별되는 작금의 폭발형 소년범죄를 사회학적으로 분석한 『‘비행 소년’의 소멸 -개성 신화와 소년 범죄(信山社出版)』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이 책에서 도이는 최근의 소년범죄를 포스트모더니즘 사회에서 생성된  ‘자신다움’ 또는 ‘개성’이 과잉으로 지향되고 있는 현대 일본 사회의 병리라는 관점에서 고찰하였습니다. 덧붙이자면, 이 책의 이론적 밑받침이 된 「‘사회’를 상실한 아이들」과 '사회 병리로서의 개성화'라는 논문으로 도이는 2003년에 범죄학관련의 우수논문을 시상하는 키쿠타 크리미놀로지(菊田クリミノジー)에서 추장상(推奨賞)을 수상했습니다. 그는 또한 소년범죄 분야에서 소년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 변화 등을 통해 ‘이질의 포섭에서 배제’를 지향하는 현재의 일본에 대해 고찰하고 있으며 이지메 문제에 대해서도 자주 언급하고 있습니다.
 
문: 가장 기억에 남는 사례가 무엇인지 말씀해 주시지요.
답: 30여 년의 세대 차이가 나는 다카노와 난조의 청년 시절을 비교해 고찰함으로써 왜 기성세대는 청년들을 이해할 수 없고, 청년들을 기성세대와 다를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심도 있게 분석한 도이의 설명은 소름끼칠 만큼 인상적이었습니다. 아마 제게도 그만큼의 나이 차이가 나는 아들이 있고, 그런 아들과의 소통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라고 느껴온 저의 개인적 경험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을 번역하면서 제 아들을 옭아매는 사상의 실체를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는 시발점을 찾게 된 것이 무척이나 큰 의미로 다가옵니다.

‘친구지옥’은 어쩌면 내 자식에게만큼은 어느 부모보다 민주적이고 싶었고, 최대한의 풍요로움을 제공하기 위해 헌신했으며,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했으나, 실제로는 자신들을 비판하고 부정하는 자녀들 앞에서 끝없이 좌절할 수밖에 없는 이 시대의 수많은 부모들에게 진정으로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적어도 내 자녀들이 겪는 심리적 좌절과 반감의 실체를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게 됨으로써 자녀와의 관계를 새로 정립할 수 있게 되는 계기를 마련할 수도 있을 테니까요.     

문 : 책 속에 담긴 저자의 주장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나는 구절이 있으시다면 무엇인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기성세대에서는 경제적으로 상류계층일수록 ‘나다음’의 지향이 강한 반면, 청년세대에서는 반대로 경제적으로 하류계층일수록 ‘나다움’의 지향이 강합니다. 기성세대가 목표로 한 ‘나다움’은 어디까지나 사회적 근거라는 자기 내부의 나침반을 전제로 한 개성의 실현이었으나, 청년세대가 목표로 한 ‘나다움’은 그 근거나 자신의 기호나 감각을 전제로 한 탈사회적인 개성의 실현이라고 할 수 있지요. 오늘날 청년들이 스스로 갇힌 ‘나다움의 감옥’에서 탈출하고, 안정된 자기긍정감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현재 만연해 있는 자기분석 따위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의외성이 넘쳐나는 체험이나 이질적인 인간과 만나는 경험의 축적이 매우 중요하다는 저자의 주장에 공감이 갑니다.   

문 : 친구지옥은 일본의 현실인데 국내 청소년 국내 교육에는 어떤 식으로 이를 받아들여야할지 의견을 말씀해 주시지요.
‘친구지옥’의 내용은 비단 일본의 청소년들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지메의 피해자와 가해자의 경계가 분명치 않고, 언제든 그 입장이 바뀔 수도 있기 때문에, 한순간도 경계태세를 늦출 수 없는 우리 청소년들의 지뢰밭 같은 학교 풍경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완득이>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소설가 김려령 작가의 작품 <우아한 거짓말> 등은 ‘친구지옥’의 한국버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친구지옥’은 겉으로는 친절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잔인한 청소년들의 인간관계가 가진 위험성을 적나라하게 지적함으로써 이 시대에 나타나고 있는 타자와의 관계성 그 자체에 던지는 근본적 질문인 셈이지요.

‘친구지옥’의 저자 도이 다카요시는 우리나라의 청소년들이 친구와의 갈등으로 야기되는 불편이나 괴로움에 대한 과도한 공포심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친구나 주변인을 지나치게 의식하거나 그들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행동방식은 결국 청년들의 사회생활이나 직업생활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은 물론 자신을 파탄으로 이르게 할 수 있는 위험성이 따르기 때문이지요. 우리의 청소년들을 ‘친구지옥’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학교나 교육이 고민해야 할 과제는 친구라는 인간관계 이외에 몰입할 수 있는 또 다른 경험의 장을 그들에게 제공하는 일일 것입니다. 다시 말해 청소년들이 자신을 잊은 채 몰두할 수 있는 무아지경의 그 어떤 행위를 발견할 수만 있다면 그들은 틀림없이 친구에 대한 과도한 집착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문 : 마지막 질문입니다. ‘친구지옥’ 정도는 아니지만 한국의 청소년들도 비슷한 많은 문제를 갖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조언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청소년들은 흔히 자신이 태생적으로 타인과 구별되는 어떤 특별한 재능과 끼를 타고 났다고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그러한 생각은 스스로의 판단에 의한 것일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 받은 교육의 영향일수도 있지요.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에게 진주처럼 빛나는 어떤 개성이나 능력이 확실히 들어나지 않는 경우, 좌절하거나 방황하게 됩니다. 태생적 능력에 대한 집착이 강한 청소년들일수록 그것을 발견할 수 없는 현재 자신의 모습과 직면했을 때, 상실감 또한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지요.

여기에서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 하나 있는데요. 청소년들은 자신이 진주로 성장해가기 위해서는 진주의 핵이 될 모래알을 자신의 껍질 내부에 집어넣어야 한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듯합니다. 거기에는 쓰라린 고통이 수반되기 때문에 어쩌면 외면하고 싶은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핵이 없으면 어떤 조개도 자신만의 영롱한 빛깔을 지닌 진주를 만들어 낼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외로움이나 고통을 견디는 인고의 세월없이 이룰 수 있는 꿈은 존재하지 않음을 이 시대의 청소년들은 직시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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