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몇 걸음 앞섰던 장하다가 "거중기 여기 있다!" 하며 손짓을 했다.
"도르래의 원리라고 했으니 이게 돌아가면서…" 알아서 거중기의 작동 원리까지 짚어 본 아이들은 뿌듯한 표정으로 제법 진지하게 전시물들을 훑고 다녔다.
"너희들, 화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라는 건 알고 있지? 화성의 가장 놀라운 점은 '화성 성역 의궤'라는 기록을 남겼다는 점이야. 나라에 큰 행사가 있을 때 그와 관련된 기록을 담은 책을 의궤라고 해. '화성 성역 의궤'는 화성을 지을 때 들어간 경비며 공사의 세세한 과정, 건축 재료들, 공사에 참여한 사람들, 사용된 기계, 그렇게 해서 완성된 건축물에 대해 자세하게 기록하고 그림을 그려 엮은 책이야. 자그마치 10권이나 된다고."
장하다가 "여기야, 여기!" 하며 의궤 모사본 앞으로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1997년에 화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때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도 바로 이 의궤였어. 선정 위원들이 의궤를 보고는 깜짝 놀라 혀를 내둘렀다는 거야. '어쩜 이렇게 자세하고도 멋진 기록을 남길 수가 있었단 말인가? 세계적으로 이런 사례는 없었는데!' 하고 말야. 건물을 짓는 데 쓰인 못의 크기와 수, 못 하나가 얼마짜리인지까지 적혀 있을 정도니까.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을 겪으면서 여기저기 부서진 화성을 다시 복원할 때도 이 의궤가 있었기 때문에 거의 처음과 똑같은 모습으로 복원할 수 있었대."
"어? 이 그림 좀 봐!" 이번엔 허영심이 병풍 그림 앞에서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