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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선생 역사교실] 남인·서인, 효종 서거 후 상복 입는 기간 두고 논쟁

2016/01/03 17:56:07

◇환국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여인들

"문제는 숙종 때 더욱 심각해졌어. 어려서부터 붕당 간의 다툼을 보고 자란 숙종은 신하들한테 끌려 다닐 것이 아니라 왕권을 강하게 세워야겠다고 생각했고, 양쪽 붕당에 번갈아 가며 조정 일을 맡아 보도록 했어. 남인들의 힘이 너무 커진다 싶으면 남인들을 쫓아내고 서인들을 불러들이고, 또 얼마 뒤에는 다시 서인들을 내쫓고 남인들에게 조정을 맡기는 식이었지. 이렇게 갑작스레 조정을 이끌 붕당을 바꿔 버린 일을 환국(換局)이라고 불러. 그런데 이런 정치 방식 때문에 서인과 남인의 대립은 한층 심각해졌어. 어떻게든 상대편의 흠을 잡아서 완전히 몰아내 버리려고 하는 분위기가 되었지. 그 과정에서 숱한 신하들이 유배를 떠나거나 죽임을 당하고, 반역자라는 누명을 쓰게 됐어."

"어휴, 이제 보니 붕당, 그거 나쁜 거네!"

"글쎄다…. 붕당에 대해서는 워낙 다양한 평가가 많으니까 쉽게 결론지을 수 있는 문제는 아니야. 다만 환국으로 인해 붕당 사이의 대립이 극단적으로 치닫게 된 것은 분명해. 근데 이런 환국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는 두 왕실 여인이 있었어. 인현왕후와 장희빈이었어. 장희빈은 궁녀였다가 숙종의 눈에 띄어 후궁이 되었어. 그런데 장희빈은 원래 남인 집안 출신이었어. 장희빈이 숙종의 사랑을 받으며 아들까지 낳자 남인들은 기세가 등등했고, 반대로 서인들은 장희빈이 힘을 가지지 못하도록 막았지. 인현왕후는 서인 집안 출신이었어. 당연히 남인들은 인현왕후의 모자란 점만 들추었어. 그 바람에 인현왕후는 왕비 자리에서 쫓겨나고 장희빈이 왕비가 되기도 했어. 하지만 몇 년 뒤, 인현왕후를 쫓아낸 것을 후회하고 있던 숙종은 오히려 남인들을 내쫓고 장희빈도 다시 후궁으로 내려앉혔어. 인현왕후는 왕비의 자리를 되찾게 됐고."

그때 장하다는 허영심이 했던 이야기를 생각해 냈다. "장희빈이 왕비 인형을 바늘로 찌르고 태우다가 사약을 받고 죽었다던데요? 진짜예요?"

"응, 그건 사실이지." "그럼 어쨌거나 나쁜 여잔 건 맞네요?" 역시 단순하기 짝이 없는 장하다의 질문에 용선생은 머리를 긁적였다.

"끙…. 그렇게 말해도 되려나? 확실히 착하고 마음 약한 사람은 아니었겠지. 그런데 사실 그런 저주 사건은 궁중 여인들 사이에서 종종 일어나는 일이었거든. 게다가 장희빈은 세자의 어머니였기 때문에 웬만한 일로 벌을 주기는 쉽지 않았지. 그런데도 끝내 사약을 받고, 천하의 못된 여자로 기억된 것은 붕당 싸움에서 서인이 승리했기 때문이라고 봐야 될 거야. 서인의 입장에서 보면 장희빈이 어진 왕비를 위협한 요사스러운 여인으로 그려지는 것이 당연한 일 아니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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