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심이 "후~" 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이 이야긴 선생님이 지어낸 거지만, 남편이 병든 부분부터는 실제 있었던 이야기야. 풍양 조씨로만 알려진 한 여인이 자기 이야기를 쓴 '자기록'의 내용이지. 다행히 조씨의 시부모는 열녀가 되라고 강요하지는 않았나 봐. 하지만 그녀도 남편을 따라 죽으려고 칼을 들었대. 근데 막상 죽으려니 무섭기도 하고 그녀의 언니가 말리는 바람에 죽지 못했대. 그런 자신에 대해서 '부부는 하나인데 내가 그 도를 거스르고 있다'고 괴로워하기도 했지. 하지만 '자기록'에는 병든 남편에게 약도 못 쓰게 하고 사돈집 음식도 선뜻 받지 못하는 시부모에 대해 상세하게 쓰여 있어. 열녀가 되기보다는 잘못된 현실을 기록으로 남겨 조용히 저항하고자 했던 조씨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지."
"잘했네요! 남편이 죽는다고 따라 죽는 게 말이 돼요?" 나선애가 화가 덜 풀린 목소리로 따지듯 말했다.
◇꿋꿋하게 다른 길을 걸었던 조선 여인들
"하지만 이런 시대에도 당당히 자신의 모습을 찾으려 했던 여인들도 있었어. 너희가 잘 아는 신사임당은 시와 글씨, 그림에서 두루 재능을 발휘했어. 또 조선의 천재 시인으로 평가받는 허난설헌이 쓴 시들은 당대에 이미 중국 명나라에 알려졌지. 참, 신사임당은 죽을 때 남편에게 재혼하지 말라고 당당하게 말했대. 공자, 증자, 주자의 예를 들며 이들도 재혼하지 않았다면서 남편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지. 임윤지당은 여자로서는 드물게 성리학을 연구해서 자기만의 학문 세계를 이뤘던 사람이야. '여자나 남자나 하늘에서 받은 품성에는 차이가 없다. 여자도 노력하기에 따라서 훌륭한 성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어. 또 강정일당은 글공부가 부족한 남편의 스승 역할까지 했던 여인인데, 마치 제자가 스승의 글을 모아 문집을 엮듯이 그 남편이 강정일당의 글을 모아 문집을 냈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