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30 10:33:34
미국정부는 우리나라 교육부처럼 학생부 작성 항목 하나하나를 조목조목 지시하지도 않거니와, 모든 전형을 대학 자율에 맡긴다. 물론 대학당국도 50여페이지나 되는 요강을 만들거나 선발방법을 명시할리 없다. 합격자는 개인 메일로 합격을 통보받는데 그때 왜 자신이 합격되었는지 입학사정관이 칭찬겸 코멘트 해줄 뿐이다. 아무튼 미국 5AT도 2016 년부터 변경되서 1600점 만점으로 작문이 선택이 된다고 한다.
미국도 상위권 입시는 우리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지만 전 국민이 목숨 걸지는 않는다. 그것은 서글프게도 역사와 경제 구조와 그 사회의 문화와도 관계가 있으니 간단하게 이렇다 저렇다 쉽게 평가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차이가 나는 것일까?
과거의 DNA를 바꾸자
대대로 하도 가난하게 살아서 대학에 가는 것만이 이 사회에서 명함 내밀고 살아갈 수 있는 입신양명의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해 온 우리 국민의 DNA (우골탑으로 상징되는)는 지금도 “국적은 바꿔도 학적은 못 바꾼다(입시학원의 캐치프레이즈)”는 생각을 가지고 대학이 마치 우리 자식의 미래 운명을 좌우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가진 자로부터 기부받아 수백명의 학생을 ‘학자금 대출’이나 ‘돼지갈비집’ 아르바이트에서 해방시켜 공부에 전념할 수 있게 할 수 있는 ‘기여입학제’도 반대하게 만드는 것이다. ‘공정함’에 대한 집착은 ‘대학입학’에선, 아니 특목자사고, 아니 국제중학교 입시에서 나타났던 재벌자녀에 대한 응징에서도 증명된다. 아직도 대학이 미래를 결정하는 열쇠이자 모든 것이라는 생각이 국가로 하여금 대입전형을 감시하고 통제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바로 선거철 당선을 좌우하는 표밭인 서민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매 정권마다 벗어나지 못한 정치인의 포퓰리즘이다. 수월성 교육과 보편적 교육의 대립은 진보와 보수의 자유와 평등 무엇이 우선인가 하는 케케묵은 논쟁의 연속선 상에 있다. 특목고나 대학의 특기자 전형을 반대하는 논리만큼이나 보수 정권의 교육정책 또한 정체성을 상실했다. 모순이다. 무슨 말이냐고?
수월성 교육을 통해 길러지는 엘리트가 국가를 발전시킨다는 생각은 동서고금이나 진보보수정권을 막론하고 공통된 생각일 수 있다. 물론 진보진영에서는 반대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정권도 서민의 등골을 휘게 만드는 ‘사교육’적 요소나 ‘귀족’에게 우선권 특혜를 줄 수는 없다는 강박관념에 매여 있다. 그게 모순을 만든다.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부모들은 공대나 의대 일부를 제외하고, 특히 문과같은 경우에는 자신의 소질이나 꿈과는 상관없이 (아니..스무살까지 없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지도 모른다. 그런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국가도 아니었으니까) 부모가 원하는 대학을 가기 위해, 자신의 성적에 맞춰 대학에 진학했다. 그나마 70년대엔 본고사라도 있어서 예비고사를 거쳐 대학이 자신이 원하는 학생을 비롯 점수로나마 평가해 선발할 수 있었던 것에 비해 퇴보한 선발방식이었다.
IMF를 겪기전까지 우리 사회는 성장률이 10%가까이 되는 아시아의 4마리 용 중에 하나였고, 일자리 수요가 대학졸업자보다 훨씬 많은 사회였다. 학과에 상관없이 대학에 진학해 OJT를 돌고, 몇 개월씩 수습교육을 받고 투입되는 그런 여유있는 사회로 기록된다. 대학을 나오지 못하면 부모는 왠지 죄를 진 것 같고, 월급은 물론 사회의 열등한 낙오자로서 심지어 결혼할 때에도 여기저기서 ‘대학도 못 나왔어?’라는 눈총을 받게 되는 그런 사회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