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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선생 역사교실] 전쟁 뒤, 인조의 두 아들은 청나라 인질로 끌려가

2015/11/22 17:30:27

◇호란이 지나간 자리

"자, 이렇게 해서 삼전도의 수치스러운 항복을 끝으로 청나라와의 전쟁이 끝났어."

"잠깐요! 근데 아무리 조선이 지쳐 있다고 해도 그렇지, 청나라 군사들한텐 왜 그렇게 당하기만 했어요?" 장하다가 물었다.

"청나라 군사들이 워낙 빨랐거든. 조선은 늘 하던 대로 북쪽의 여러 산성에서 청군을 맞아 싸우려 했는데, 청군은 산성 사이를 지나쳐 그냥 한양을 향해 달려왔다는 거야."

"그래도 전쟁이 짧았으면 백성들한테 큰 피해는 없었겠네요." 나선애의 말에 용선생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리가…. 호란도 많은 고통과 상처를 남겼지. 임진왜란 때는 특히 남쪽 지역의 피해가 컸다면 이번엔 북쪽 지방의 피해가 컸어. 많은 사람이 포로로 잡혀갔는데, 청군은 가족들이 보내 주는 몸값을 받고 나서야 포로를 풀어줬어. 특히 여자들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고통에 시달려야 했어. 청나라에 잡혀갔다가 갖은 고생 끝에 겨우 돌아온 여자들, 특히 양반집 여자들은 가족들이 받아 주지 않았거든."

"말도 안 돼! 그럴 거면 진작에 나라나 잘 지킬 것이지!" "내 말이!" 나선애와 허영심이 얼굴을 마주 보며 눈에 힘을 주었다.

이때 어느샌가 다시 다가온 할아버지가 말을 붙였다.

"참 신기한 일일세. 내가 여기에 와서 공부하는 학생들은 또 첨 보네. 여긴 찾아오는 사람도 별로 없거든. 장한 학생들이여. 가만, 내 가서 쭈쭈바라도 사올 텡게, 기다려잉?"

할아버지가 기특하다는 듯 아이들을 둘러보더니, 멀어져 갔다. 용선생은 다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뒷이야기가 더 남았어. 전쟁이 끝난 뒤 인조의 두 아들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은 청나라에 인질로 끌려갔어. 봉림대군은 속으로 칼을 갈면서 조선에 돌아가 복수를 할 날만을 기다렸대. 그렇지만 소현세자는 청나라에 들어와 있던 서양 문물과 과학기술을 접하게 되면서 점점 태도가 달라졌어. 조선도 실력을 기르려면 서양과 청나라의 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지. 그 뒤 8년 만에 두 왕자가 조선으로 돌아왔어. 하지만 인조와 신하들은 소현세자를 별로 반기지 않았어. 원수 같은 청나라와 친하게 지내다 왔으니 배신자처럼 보였을지도 몰라. 그러다 두어 달 만에 소현세자는 갑자기 죽어 버렸어. 그 뒤를 이어서 봉림대군이 세자가 되고, 왕위에 올랐지."

"아깝다. 왜 갑자기 죽어 버렸대요?" "학질이란 병에 걸렸대. 그런데 세자의 온몸이 검은빛으로 변하고 피가 흘러나오는 등 이상한 점이 많아서 독살이라는 말들도 있었대. 아무튼 인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봉림대군, 즉 효종은 임금이 되자마자 청나라로 쳐들어가겠다고 별렀어. 처음엔 청나라에 이를 갈던 신하들도 그 뜻을 따랐지. 하지만 그런 울분과 복수심만으로 전쟁을 일으키기란 쉽지 않았지. 결국 효종이 즉위한 지 10년 만에 세상을 떠나면서 더 이상 청나라로 쳐들어가자는 말을 꺼내는 사람이 없어졌지."

허영심이 맥 빠진 표정으로 삐죽거렸다. "애초에 청나라가 쳐들어오지 않았으면 이런 어려움도 없었을 텐데…."

용선생은 아이들을 보며 잠시 무언가 생각하더니 일어나 비석을 향해 다가갔다. "그게, 나쁜 일이 생기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겠지. 하지만 얘들아, 우리가 이 비석을 보면서 꼭 기억해야 할 점이 있어. 역사를 대할 땐 입맛에 맞는 대로 뭔가를 보태거나 빼려 들어선 안 된다는 점이야.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최대한 정직하게 바라볼 때 역사는 우리에게 진실한 교훈을 전해 주는 법이란다. 그래서 이런 말도 있지 않니?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

한마디 한마디 힘주어 쏟아 낸 용선생이 마지막으로 듬직한 미소를 날려 주기 위해 천천히 돌아섰지만 이미 아이들은 아이스크림을 들고 나타난 할아버지 곁으로 우르르 몰려간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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