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와 후금의 틈바구니에서
"임진왜란이 끝난 뒤, 선조는 식량을 아끼기 위한 정책을 내놓는가 하면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을 늘리기 위해 개간 사업도 벌였지. 또 다치고 앓아누운 백성들을 위해서 의학 책도 만들었어. 궁중 의원 허준에게 각종 의학 지식이며 여러 가지 병의 치료법을 한데 정리해 '동의보감'을 만들도록 한 거야."
그 말에 곽두기가 반색을 하며 "저 그 책 알아요! 할아버지가 가끔 이야기하시는 책이에요" 하고 말했다. "그래, '동의보감'은 지금까지도 널리 활용되고 있는 책이야. '동의보감'은 10년이 넘는 집필 기간을 거쳐 광해군 때에야 완성됐지. 선조가 죽은 뒤 그 뒤를 이은 광해군은 본격적으로 전쟁의 피해를 씻어 내고 다시 나라의 체계를 세우기 위해 애썼어. 토지 문서와 호적도 새로 만들고, 백성들의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해 세금 제도도 개혁하고, 그런가 하면 전쟁 통에 불타 버린 궁궐을 고치거나 아예 새로 짓는 공사도 여러 차례 벌였어. 그런데 이때 너무 무리하게 큰 공사를 벌이는 바람에 문제가 생기기도 했지. 공사 비용을 모으는 일도 큰일이었거니와, 매번 많은 백성들을 끌어다 공사에 동원해야 했으니까."
"안 그래도 힘든 시긴데 궁궐 공사는 좀 천천히 하면 안 되나?" 허영심의 불만스러운 목소리였다.
"광해군은 나라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왕과 왕실의 권위를 높이 세우는 일이 뭣보다 급하다고 여긴 것 같아. 이 이야기는 이따 조금 더 하기로 하자. 자, 이렇게 조선이 전쟁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이리저리 애쓰는 동안 중국 대륙에서는 커다란 변화가 생겼어. 만주의 여진족들이 힘을 키우는가 싶더니 후금이라는 나라를 세우고 명나라에 도전장을 내민 거야. 결국 1618년, 명나라는 조선에 군사를 보내 달라고 요구했어. 그것 참 골치 아픈 문제가 생긴 거지!"
"왜요? 보낼 군사들이 없어서요?" "물론 전쟁을 치른 지 얼마 되지 않은 조선으로서는 군사를 보내기도 만만치 않았지.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어. 광해군이 딱 보니까 명나라는 지는 해고 후금은 뜨는 해였던 거야. 지금껏 조선이 명나라를 섬겨 오긴 했지만 무작정 명나라 편을 들었다가 나중에 명나라가 망해 버리면 어떡해? 조선처럼 작은 나라가 위험 해지는 건 시간 문제 아니겠어?"
"호오, 그렇구나~. 그럼 군사를 보내면 안 되겠네요." 장하다가 눈을 껌벅거리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