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이제 긴 전쟁이 막바지로 들어섰어." 다시 자료 화면이 이어졌다.
얼마 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러자 왜군은 본국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순신은 도망치는 왜군을 뒤쫓아 노량 해협에서 마지막 전투를 벌였다. 이때 이순신은 왜군의 총탄에 맞아 쓰러졌다. 그는 "싸움이 급한 상황이니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전사하고 말았다. 이 싸움에서 조선이 크나큰 승리를 거둠으로써 7년에 걸친 전쟁이 마침내 막을 내렸다. 1598년 11월 19일의 일이었다.
"임진왜란이 이렇게 긴 전쟁인 줄 처음 알았어요." 나선애가 이야기하자 용선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전쟁이 조선에 남긴 상처는 어마어마했어. 정치며 경제, 각종 제도와 사회 질서 등 나라 운영의 밑바탕이 통째로 위기에 처하게 됐으니까. 인구수가 크게 줄어든 것은 물론이고, 농사지을 땅도 3분의 2가량이나 망가져 버렸지. 또 토지 문서나 호적 문서가 대부분 불에 타 버려서 전쟁이 끝난 뒤에도 한동안은 세금조차 제대로 거둬들일 수 없었어. 그 때문에 조정에서는 곡식이나 돈을 바치는 사람에게 특별한 혜택을 주는 제도를 통해 겨우 재정을 채우곤 했어. 대표적인 것이 공명첩이었는데, 이는 허울뿐인 관직을 내려 주는 임명장이었지. 그 밖에 노비를 양인 신분으로 풀어 주는 제도도 있었어. 그런가 하면 전쟁 기간에 경복궁이나 불국사, 실록을 보관하던 사고 등 숱한 문화재가 파괴됐어. 온통 부서지고 망가진 속에서 어떻게 다시 국력을 회복하고 안정을 되찾을 것인가, 전쟁이 끝나자 조선은 이런 큰 숙제와 마주하게 됐지."
임진왜란이 끝난 뒤 명나라는 하루가 다르게 기울어 갔어. 조선에 대규모의 군대를 보내느라 힘이 약해진 마당에 만주에서 세력을 키운 여진족이 명나라를 공격했거든. 결국 얼마 뒤 명나라는 망하고 여진족이 세운 청나라가 중국 대륙을 차지하게 됐지."
"그럼 왜는요? 왜도 괜한 전쟁을 일으켰다가 손해만 보고 끝난 건 아닌가요?" "물론 왜 역시 이 전쟁에 국력을 다 쏟아 부었기 때문에 타격을 받았어. 하지만 그들은 얻은 것도 많아. 지금도 일본에선 임진왜란을 '도자기 전쟁'이라고 부르곤 한대. 전쟁 때 포로로 잡아간 도공들을 통해서 일본의 도자기 문화가 크게 발달했기 때문이지. 뿐만 아니라 그들은 임진왜란 때 조선의 성리학을 받아들여서 학문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었어.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의 학자들이 일본에 성리학을 전해 주었거든."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다. 마지막으로 숱한 희생 속에서도 용감하게 적에 맞서 나라를 지켜 낸 장군들과 의병들, 그리고 조선의 백성들에게 박수 한번 보내 줄까?" "네!"
짝짝, 용선생의 큰 손바닥이 마주치는 소리를 시작으로 역사반 교실에는 꽤 오랫동안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