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도 반대 성명 낸 학자가 많아 집필진 구성에 난항일 것이란 예상이 있는데.
"국사편찬위원회 안에 편사 연구직이 45명이다. 어떤 대학에 이만한 인력이 있겠나. 단, (우리는) 보다 다양한 기관과 학교에서 집필진을 모을 예정이다. 단일 학파나 학맥으로 역사 해석이 쏠리는 걸 막기 위해서다. 반대 성명한 학자들도 국정 교과서 전환 내막을 알고 보면 하나 둘 돌아설 것으로 본다. 현행 검정 교과서의 출판사별 집필진은 1~2명이 겨우 이름이 알려진 정도거나, 중·고교 교사로만 이뤄지기도 했다. 이런 사정을 잘 모르고 반대했던 학자들도 내막을 알면 양심의 가책을 느낄 것으로 본다."
―균형 잡힌 집필진을 구성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중립적인 집필진을 꾸린다고 20명 중 10명은 좌편향, 10명은 우편향으로 하겠다는 게 아니다. 극단적인 견해를 표출해 온 극좌·극우 학자들과는 함께 가지 않겠다. 우리나라의 정통성을 인정하는 합리적인 학자들 가운데 '중·고생들에게 좋은 책을 만드는 데 동참하겠다'고 희망하면 개방하겠다. '좋은 분'들을 모시기 위해 예산을 더 들여서라도 최대한 대우할 방침이다."
―집필 기간이 1년 정도밖에 안 되는데 너무 짧지 않나.
"지금까지 역사 교과서를 쓸 때 집필 기간을 1년 확보한 적도 별로 없었던 것으로 안다. 이번에는 집필진 숫자 자체가 크게 늘 것이고, 국사편찬위원회 인력까지 검증팀 등으로 대거 투입될 것이라 집필 시간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김 위원장은 한때 '검정 교과서'를 주장하기도 했는데.
"개인적으로 70년대 암울하고 민주화를 외치던 시기엔 검·인정 교과서를 주장했다. 그런데 40년이 흐른 지금, 검정 역사 교과서가 도입됐지만 다양한 사관(史觀)이 풍성한 민주화를 더 꽃피웠는지 의문이다. 오히려 한쪽으로 편향된 교과서가 넘쳤다. 출판사들은 돈을 벌 요량으로 잘 팔리는 (편향된) 교과서만 만들고 있다. 나의 소신은 자유민주주의에 입각한 역사를 쓰자는 것뿐이고, 이는 예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았다. 지금은 독재 정권 시대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딴 나라 역사가 아닌 우리 역사로 쓰기 위해 (국정화가 맞다는) 판단을 했을 뿐이다."
―지금 검정 교과서들의 편향성이 심각하다고 보나.
"우리 중·고생들이 오해할 소지가 있다. 예컨대 북한의 토지 무상 분배에 대한 기술은 '북한 주민들에게 소유권이 있다'는 것처럼 오해하기 쉽다. 사회주의 공산국가에 무슨 사유 재산이 있겠나. 내가 2005~2006년 고구려연구재단(현 동북아역사재단에 흡수 통합) 이사장을 맡을 때, 북한을 왔다 갔다 하면서 북한 학자도 많이 만났다. 그들에게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의 역사를 기술한다'고 했더니, 그들도 '인정한다'고 하더라. 북한도 우리의 역사 기술에 문제가 없다는데, 왜 우리 내부에서 과도하게 북한 역사를 소개하며 불편한 역사 논쟁을 하나. 중·고생 시절에 알 필요 없는 것까지 자세히 기술할 필요는 없다."
―일각에서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는 곧 '친일·독재'를 뜻한다며 반발하는데.
"요즘 세상에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는 교과서를 누가 받아들이겠는가. 내가 4·19 때 데모 대열에 나선 사람이다. 내 명예를 걸고 그럴 일은 없다."
―바뀐 국정 역사 교과서로 공부할 학생들을 위해 조언하자면.
"우리 역사는 스스로 발전하기도 했지만, 인접국 침략 속에 고생하면서 발전한 적도 있다. 근·현대에 들어와 전쟁도 겪고 아픈 역사도 많았다. 이런 모든 걸 극복하고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만들어졌다. 이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자라나는 학생들이 배우고, 이 나라를 더 발전시키겠다는 희망찬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다."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은
고려대 사학과 출신으로 한국고대사를 전공한 역사학자다. 제14대 고려대 총장, 고구려연구재단 초대 이사장을 역임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과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위원장 등을 거쳐, 올 3월부터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