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어떻게 임금이 혼자 살겠다고 도망을 쳐?" 허영심이 뜻밖이라는 듯 두 볼을 감싸며 소리쳤다. "백성들도 큰 배신감을 느낀 모양이야. 평양에 머물던 선조의 피난 행렬이 다시 북쪽으로 도망치려 하자 흥분한 백성들이 무기를 들고 몰려들기도 했어. 그리고 전쟁 초기에 경복궁이 불에 타 버렸거든. 그런데 경복궁에 불을 지른 것이 조선 백성들이라는 기록도 있어. 노비들이 혼란을 틈타 노비 문서를 태워 없애려다가 생긴 일이라고도 하고, 도망친 왕과 신하들에게 화가 난 백성들이 궁에 불을 놓은 거라고도 해. 어쨌건 조선 왕조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경복궁이 정말 조선 백성들의 손으로 불태워졌다면 지배층의 권위는 땅에 떨어진 거나 마찬가지지. 그나마 광해군이 활약한 덕분에 백성들의 배신감은 조금이나마 누그러졌어."
"광해군이라면, 왕 아닌가요?" "이때는 왕이 아니라 세자 신분이었어. 선조는 전쟁이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세자를 정하지 않고 있었어. 후궁이 낳은 아들은 여럿 있었지만 왕비의 몸에서 태어난 아들은 없었거든. 하지만 전쟁이 터지고 쫓겨 갈 처지가 되자 급한 대로 후궁의 아들인 광해군을 세자로 삼은 거였어. 혹시 전쟁 중에 왕이 죽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비록 도망치는 왕일지언정 백성들을 나 몰라라 할 수는 없었거든. 선조는 광해군을 함경도로 보내서 백성들을 이끌게 했어. 광해군은 길거리에서 먹고 자면서 직접 병사들을 모아 왜군을 막는 데 앞장섰대. 세자가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그렇게 애쓰는 모습을 보면서 백성들도 적잖이 위안을 받았지.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왜군을 물리칠 수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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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군과 의병의 활약으로 전세를 바꾸다잠시 동안의 침묵을 깨고 장하다가 문득 외쳤다. "그렇지만 우리한텐 이순신 장군님이 있었잖아요!"
"오냐, 맞다. 이순신은 바다에서 싸운 수군의 장수였지? 이제부터 조선의 수군이 대활약을 해 줄 거야. 조선군의 반격은 바다에서 시작됐다. 전라 좌수사 이순신은 진작부터 식량을 저장해 두는가 하면 군함을 갖추고 무기를 보강하는 등 외부의 공격에 대비하고 있었다. 그에 비해, 왜의 수군은 본래 전투보다는 식량 등 물자를 실어 나르는 역할이 더 큰 병력이었다. 이순신의 군대는 5월 7일 경상도 옥포에서 왜군과 싸워 첫 승리를 거둔 뒤, 잇달아 벌어진 해전에서 연거푸 승리했다. 7월에 벌어진 한산도 대첩에서는 학이 날개를 펼치는 형세로 적을 에워싸는 학익진(鶴翼陣) 전법을 통해 큰 승리를 거두어 왜군의 기세를 완전히 꺾어 놓았다. 이제 더 이상 서해와 남해에는 왜군의 배가 접근할 수 없었다. 그러자 육지의 왜군은 본국으로부터 식량과 무기를 공급받기 어려워졌다. 상황은 빠르게 뒤바뀌기 시작했다.
어,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애들아! 이순신 장군의 활약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설명해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