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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선생 역사교실] 서경덕 도 닦듯 학문 매진 조식 왕에게 서슴없이 쓴소리

2015/10/04 17:17:20

용선생이 다시 아이들을 향해 돌아앉자, 하다와 두기도 "벌써 다리가 저려" 하며 제자리로 돌아왔다. "또 한 사람, 남명 조식이란 학자가 있었어. 이황과 똑같이 1501년에 태어나 활동했던 학자로, 당대에는 이황과 어깨를 견줄 정도였어. 조식은 성리학의 원리를 파고들기보다는 학문의 실천과 현실 비판에 더 큰 관심을 기울였어. 그는 허리에 '항상 깨어 있으라'고 새겨 넣은 방울을 차고 다녔고, '경의도(敬義刀)'라는 칼을 가지고 다녔대. 이 경(敬)과 의(義)는 조식에게 아주 중요한 덕목이었어. '안으로는 자신을 수양하고, 밖으로는 단호하게 옳은 것을 행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거든."

"그래도 선비하고 칼은 좀 안 어울리는데요." 허영심의 말에 장하다가 "왜, 멋있는데?" 하며 칼을 휘두르는 흉내를 냈다.

"조식은 분명 학자치고 꽤 과격했던 사람이었어. 문정왕후 일파가 을사사화를 일으킨 뒤 권력을 쥐고 흔들 때도 다들 벌벌 떨며 문정왕후의 눈치만 살폈지만 조식은 눈도 깜짝하지 않았어. 오히려 문정왕후 때문에 나라가 망할 지경이라며 왕에게 정신 차리고 제대로 나랏일을 돌보라고 상소를 올려서 목숨이 위태로워지기도 했어. 벼슬 자리를 수도 없이 사양했던 이황마저 조식에게 비판을 받은 적이 있지. 조식이 보기에는 이황이 10여년간 벼슬을 했던 것마저 권력자들에게 힘을 보탰던 것으로 비춰졌던 거야. 이황이 매화 같은 선비였다면 조식은 칼 같은 선비였다고 할까? 그래서 그의 뜻을 이어받은 후배 학자들 중에는 나중에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의병장으로 나선 이들이 유독 많아." 장하다가 "거봐, 멋있네!" 하며 주먹을 휙 휘둘렀다.

"옛날 선비들은 비슷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네요. 공부한 내용이나 방법도 다르고, 느낌도 다 다르고." 나선애의 말에 다른 아이들도 "나는 겸손한 이황이 좋아", "그래도 천재 율곡이 최고지!" 하며 재잘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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