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적 장면 ①ㅣ똑똑했지만, 더 완벽하길 바랐던 아버지 영조
영조가 1735년 '기적'을 봤다. 꿈에 그리던 아들을 얻었다. 바로 사도 세자다. 당시 영조의 나이는 마흔한 살이었다.
이전까지는 대(代)를 이을 세자가 마땅히 없었다. 1719년 세도 세자의 이복형이자 맏아들 효장 세자를 얻긴 했지만, 열 살이 되던 해 세상을 떠났다. 이후엔 옹주들만 봤다. 느지막이 다시 아들을 본 영조의 기쁨은 두말할 것 없었다.
사도 세자는 어릴 때 아주 총명했다. 그가 한 살 때, '王(왕)'이라는 글자를 보고 영조를 가리켰다고 한다. 첫돌이 조금 지났을 무렵, 읽었던 글자는 63자(字)에 달했다. 세 살 때엔 '효경'과 '소학'을 읽었다는 기록도 있다. 습득력은 조선 역대 세자 중 최상위에 속했다.
영조는 영특한 세자를 보며 흐뭇했다. 기대도 아주 컸다. 영조는 첫돌 즈음 아들을 세자에 책봉했다. 비슷한 시기엔 세자의 공부를 가르치는 '시강원'도 만들었다. 사도 세자는 겨우 두 발로 걷기 시작할 때, 왕위 계승을 위한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영조가 조기교육을 추진한 이유는, 자신이 '완벽하지 않은 왕'이라는 콤플렉스 때문이었다. 그는 재위 기간 내내 형 경종을 독살해 왕위에 올랐다는 의혹에 휘말렸다. 그의 친모는 천민인 무수리였다. 당연히 정통성 논란이 일었다. 게다가 왕이 된 것도 신하(노론)들의 힘 덕분이었다. 영조는 아들이 자신과 달리 완벽하길 바랐다.
결정적 장면 ②ㅣ"네가 내 대신 왕의 업무를 맡아라…" 대리청정으로 더 벌어진 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