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9/01 15:59:35
강원 원주시 토지길 1. 이곳엔 소설가 박경리 선생의 옛 집(일명 하얀집)이 있다. 선생은 이 집에서 1980년부터 18년 동안 머물며 '현대문학사(史)의 거대한 산맥'이라고 불리는 대하소설 '토지'의 마침표를 찍었다.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5층짜리 건물 '박경리 문학의 집'<사진④>이 들어서 있다. 이곳은 선생의 작품 세계를 다룬 문학관이다. 임의숙 책임해설사는 "두 곳을 모두 돌아보면 선생의 책을 읽지 않아도 책을 읽은 것 같은, 책을 읽었어도 다시 읽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들 것"이라고 했다.
'특별한 책 읽기'의 출발점은 '박경리 문학의 집'. 5층 '세미나실 - 회상하다'에서 첫 구절이 시작된다. 이곳에선 선생의 생애와 문학 세계가 담긴 약 16분짜리 영상이 상영된다. 영상이 끝나면 문화해설사가 10여 분 동안 관련 해설을 덧붙인다.
한 층 내려오면 자료실<사진③>이 나온다. 자료실의 부제는 '살펴보다'. 말 그대로 선생의 작품 세계를 살펴보는 공간이다. 선생은 생전 80여 편의 작품을 남겼다. '불신시대' '김약국의 딸들'…. 이곳에선 주로 '토지' 이외의 작품을 읽는다.
3층 전시실은 오로지 소설 '토지'만을 위한 공간이다. '토지'의 역사적, 공간적 이미지와 등장인물의 관계도 등을 친절히 설명해준다. 선생이 하얀집에서 마무리한 '토지' 4·5부는 한 곳에 모아 전시했다.
2층에선 선생의 손때 묻은 유품을 볼 수 있다. 그가 손에서 놓지 않았던 국어대사전, 손수 옷을 지을 때 썼던 재봉틀, 육필 원고<사진②> 등이 있다. 텃밭을 일굴 때 쓰던 호미와 장갑도 한쪽에 놓여 있다. 임 해설사는 "생전에 선생께서는 '호미는 만년필, 텃밭은 글밭'이라고 했다. 직접 텃밭을 가꾸며 영감을 떠올리셨던 거다"라고 했다. 선생은 직접 토지(土地)를 일구며 소설 '토지'를 완성했다.
선생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사진도 비교적 많이 남아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건 선생이 어렸을 적 어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 사진 옆엔 어느덧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선생이 먼저 떠난 어머니를 그리며 쓴 시 '어머니'가 새겨져 있다.
박경리 문학의 집을 나와, 선생의 옛 집에 들어선다. 입구부터 깔린 자갈길 지나 마당에 다다르면, 커다란 돌에 걸터앉아 쉬는 선생의 동상<사진①>이 눈에 띈다. 그의 왼쪽엔 소설 '토지'와 호미가, 오른쪽엔 그가 키우던 고양이 '후치'가 함께 있다. 임 해설사는 "생전에 선생은 텃밭을 일구다가 지치면 그 자리에 앉아 치악산 줄기를 바라봤다. 그리고 글감도 함께 떠올렸다고 한다"고 했다.
집안에 입성한다. 현관 왼편엔 사랑방이 있다. 고(故) 박완서(1931~2011) 등 후배 작가가 찾아오면 내주던 곳이다. 현재 사랑방엔 소설 '토지'의 지형(紙型·식자판 위에 축축한 종이를 올려놓고 무거운 물건으로 눌러서 그 종이 위에 활자 자국이 나타나게 한 것)이 전시돼 있다.
부엌 맞은편엔 서재와 집필실<사진⑤>이 있다. 현재 서재엔 선생이 모아뒀던 옛 서적 일부가 남아 있다. 집필실은 서재 옆쪽으로 나 있다. 임 해설사는 "선생은 이곳을 상당히 아꼈다. 외출할 때 현관문은 열어놔도 집필실 문은 반드시 잠그고 나갔다"고 했다. 1994년 8월 15일 새벽 2시, 선생이 마침내 소설 '토지'의 집필을 끝냈을 때에도 수많은 취재 요청을 뿌리치고 단 한 명의 기자만 방에 들였다.
옛 집을 둘러본 뒤, 마지막으로 거실 한편에 있는 선생의 핸드프린팅과 마주했다. 직접 손을 대보니 절반이 채 안 됐다. 그는 그토록 자그마한 손으로 '문학'이라는 아주 커다란 선물을 사람들에게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