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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은 사화, 위기에 처한 사림파"자, 그럼 사림파와 훈구파의 줄다리기는 어떻게 된 걸까?"
용선생의 질문에 나선애가 "훈구파가 중종을 세웠으니까 훈구파가 이긴 거죠" 하고 대답했다.
"그렇겠지? 훈구파 신하들은 다시 중요한 벼슬자리들을 차지하고 세조 때와 비슷한 상황을 만들어 갔어. 하지만 중종은 훈구파 신하들이 시키는 대로만 하는 허수아비 왕이 되고 싶지 않았어. 그는 훈구파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연산군이 망쳐 놓은 정치를 바로잡기 위해 다시 사림파를 불러들였어. 대표적인 사람이 조광조였어. 성리학에 밝은 데다 대쪽 같은 성품에 바른말을 잘하는 사람이었던 조광조는 중종의 신임을 받으면서 여러 개혁적인 정책들을 강하게 추진해 나갔지. 그는 우선 현량과를 실시해서 벼슬길이 막혀 있다시피 했던 사림들을 다시 끌어모았어."
"현량과가 뭔데요? 시험인가요?" "응, 현량과란 '현명하고 어진 인재를 뽑는 시험'이라는 뜻인데, 전국 각지의 관리들과 선비들이 추천한 인재들을 모아 따로 시험을 치러서 관리를 뽑는 제도였어. 이때 인재를 추천하는 기준은 학식과 재능뿐 아니라 성품, 행동거지, 평소 생활 태도 등 과거 시험으로는 평가하기 어려운 것들이었어. 물론 현량과를 통해 새로 뽑힌 관리들은 대부분 조광조를 따르는 사림파였지. 이렇게 서서히 세력을 회복한 조광조와 사림들은 한발 더 나아가 훈구파들에게 정면으로 도전장을 던졌어. 중종이 왕이 되는 데 세운 공을 인정받아서 공신으로 임명된 신하들을 다시 심사해서 공신 지위를 취소하고 그들이 상으로 받은 땅이며 물품들도 나라에 반납하도록 하는 정책을 추진한 거야. 공신이란 왕의 권력을 뒷받침하는 세력이나 다름없으니 이 과정이 쉬울 리 없었지. 하지만 조광조는 끝내 전체 공신의 4분의 3에 달하는 76명의 공신들을 정리해 버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