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군, 두 번째 피바람을 일으키다
"연산군은 바른말을 하는 신하들이 없어지자 나랏일은 뒷전이고 술과 여자에 빠져 노는 일에만 열심이었지. 그렇게 몇 년이 흐른 뒤 또 큰 사건이 터졌어. 연산군이 자신의 친어머니가 사약을 받고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거든. 유난히 질투가 심해서 성종의 얼굴에 손톱자국을 내기도 했다는 윤씨는 '성품이 어질지 못해서 국모의 자격이 없다'는 이유로 왕비 자리에서 쫓겨나 사약을 받고 죽었어. 당시 연산군은 어렸기 때문에 아무것도 몰랐지. 성종은 뒷날 아들이 혹시라도 친어머니의 일을 알게 되면 화를 불러일으킬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아무도 그 일을 입에 담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고. 그러니 신하들은 물론 궁궐 안 그 누구도 폐비 윤씨의 일에 대해서는 비밀로 하고 있었던 거지."
"세상에… 연산군의 충격이 컸겠네요. 그런데 어떻게 알게 된 거예요?" 허영심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혼란기에 권력을 잡아 보려는 훈구파 신하가 일부러 연산군에게 일러바친 거였어. 결국 연산군은 폐비 윤씨 사건을 들춰내 다시 한 번 엄청난 피바람을 일으켰어. 연산군은 친어머니가 그렇게 된 것이 성종의 후궁들이 성종에게 자기 어머니에 대해 나쁘게 말했기 때문이라면서 성종의 두 후궁을 붙잡아다 직접 때리고 발길질을 하는가 하면 그 아들들, 그러니까 자신의 배다른 동생들을 불러다 매질을 시키기까지 했다지. 결국 두 후궁은 그 자리에서 맞아 죽었고, 배다른 동생들도 유배를 갔다가 죽임을 당했어."
용선생은 잠시 이야기를 멈추고 아이들의 표정을 살폈다. "좀 놀랍지?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어. 폐비 윤씨 사건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던 신하들은 모두 화를 입게 됐는데, 그 수가 한둘이 아니었어. 사림파 신하들은 물론이고, 훈구파 신하들도 수도 없이 붙잡혀 무서운 형벌을 받거나 처참하게 죽어나갔어. 이 사건을 갑자사화라고 해. 1504년 갑자년에 벌어진 사화였기 때문이야."
"정말 끔찍하다. 친어머니가 그렇게 죽었다는 걸 몰랐으니 슬프기야 했겠지만, 어쩜 그렇게까지 할 수가 있죠?" 나선애가 부르르 어깨를 떨었다.
"그런데 연산군이 갑자사화를 일으킨 게 꼭 친어머니의 일 때문만은 아니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어. 나중엔 왕의 옷자락을 더 넓게 만들자고 하거나 중국에서 수박을 사오는 일을 좀 줄이자고 했다가 화를 당한 신하들도 있었거든. 즉, 연산군의 진짜 목표는 신하들이 자신에게 찍소리도 못하게 하는 거였다는 이야기지. 더는 거칠 것이 없는 연산군은 뭐든 제멋대로였어. 언관들이 일하는 홍문관과 사간원을 아예 없애 버리고 경연도 폐지했지. 성균관도 없애고, 그 자리는 아예 잔치를 벌어먹고 마시는 장소로 바꿔 버렸어. 그리곤 전국에서 예쁜 여자들을 뽑아다 궁궐 안에서 지내게 했어. 이 여자들을 '흥청'이라고 불렀는데, '흥청망청'이라는 말이 이때 처음 생겨났다는구나."
"왕이 아니라 날건달이네." 왕수재가 꺼림칙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연산군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궁금하지? 그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해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