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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선생 역사교실] 1 혼인·제사·형벌 등 규정… 조선의 헌법 ‘경국대전’, 성종 때 완성

2015/08/09 17:25:55

◇나라의 제도를 완성한 성종과 사림파의 등장

"세조의 뒤를 이은 예종은 몸이 약해서 왕이 된 지 1년 2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어. 그 뒤를 이은 건 예종의 조카인 성종이었지. 그가 왕위를 물려받는 게 당연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훈구파 신하들이 힘을 써서 그렇게 된 거였어. 성종은 바로 한명회의 사위였거든. 그런데 성종도 왕이 됐을 때 열세 살에 불과했어."

성종이 어렸다는 말에 허영심이 불안한 듯 "어머, 또요?" 했다.

"응, 하지만 단종과 달리 성종에게는 할머니와 어머니가 있었어. 보통 왕이 어릴 경우엔 왕실의 웃어른인 대왕대비나 대비가 신하들과 상의해서 나랏일을 돌보곤 했어. 왕의 등 뒤에 발을 드리우고, 발 뒤에 왕실의 여인이 앉아서 나랏일을 보는 거지. 이런 걸 '수렴청정(垂簾聽政)'이라고 해. 성종 대신 수렴청정을 한 것은 할머니 정희왕후였어. 그렇게 7년의 세월이 흐른 뒤, 스무 살이 된 성종은 직접 나라를 다스리기 시작했어. 성종은 원래부터 학문을 좋아하는 성품인 데다 신하들이 시키는 대로 임금 수업도 아주 착실하게 받았대. 하지만 훈구파 신하들의 힘이 너무 세졌다고 생각한 성종은 꼭두각시 왕이 되지 않기 위해서 그들과 맞설 수 있는 다른 신하들을 찾기 시작했어."

"그런 신하들이 남아 있었나요?"

"조정에는 없었지만 멀리 지방에는 있었지. 고려 말기의 정몽주나 길재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학문의 전통을 지키면서 그에 따라 도덕적으로 깨끗한 정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선비들이 있었거든. 이들을 선비들의 무리라는 뜻으로 사림(士林)이라고 했어. 대표적인 사람이 김종직이었는데, 성종은 그에 대한 믿음이 아주 커서 늘 중요한 일을 맡기고 그의 말을 귀담아들었대. 덕분에 김종직을 따르는 젊은이들이 많아지면서 사림파의 세력도 순식간에 커졌지. 이들은 대개 '삼사'라고 불리는 홍문관, 사간원, 사헌부에서 일했어. 삼사에서 하는 일을 왕과 높은 관리들이 정치를 바르게 하고 있는지, 잘못하는 일은 없는지 지켜보고 충고와 비판을 하는 것이었어. 그러니 훈구파들이 전처럼 멋대로 권력을 휘두르기 어려워졌겠지? 이렇게 두 세력이 힘의 균형을 이루면서 일단은 정치가 안정됐어. 그리고 이 시기에 바로 이 책, 조선의 헌법이라고 할 수 있는 '경국대전'이 완성됐지! '경국대전'에 무슨 내용이 있는지 어디 한번 볼까? 에, 호패를 위조하면 사형! 가지고 다니지 않으면 곤장 100대를 친다."

그 말에 장하다가 기겁을 했다. "네에? 어쩌다 잊을 수도 있는 건데요!"

"좀 심하긴 하지? 그만큼 백성들의 호적 관리를 철저히 해서 나라의 근간을 튼튼하게 하겠다는 뜻일 거야. 그렇지만 백성들에게 가혹한 조항만 있던 건 아니야. 이런 내용도 있지. 집이 가난해서 혼인할 나이를 넘기고도 혼인을 못하는 사람이 있으면 나라에서 재물을 보조해 준다."

"이야, 결혼할 돈이 없다고 나라에서 재물을 준다는 소리는 처음 들어 봐요. 멋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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