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세조가 정치는 잘했나요?" 허영심의 말에 용선생이 "그렇지! 이제 그 이야길 해 볼 차례구나" 하며 허둥지둥 교탁 아래로 숨더니 부스럭부스럭 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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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권을 키운 세조와 훈구파다시 나타난 용선생의 모습에 잔뜩 심각하던 아이들의 표정이 절로 풀어졌다. 가슴에 용을 그려 넣고 금색 천을 이리저리 이어 붙여 곤룡포를 흉내 내긴 했지만, 그건 누가 봐도 앞치마였다. 양쪽 어깨에는 '왕권 강화!''부국강병!'이라고 쓰여 있었다.
"여봐라! 나는 약해진 왕권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이 나라 조선을 강하고 튼튼한 나라로 만들 것이다. 이제부터 왕이 하는 일에 함부로 대들고 반대하는 신하들은 내가 봐주지 않을 것이다. 알겠느냐!"
아이들이 엉겁결에 "예" 하고 대답을 하자, 용선생은 만족한 듯 씩 웃었다. "좋다. 우선 내가 왕위에 오를 수 있도록 도와준 신하들에게는 상으로 토지, 노비와 함께 높은 벼슬을 내리겠노라. 다른 신하들은 함부로 목소리를 높일 생각을 말라! 그리고 집현전은 더 이상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곳이니, 오늘부터 문을 닫는다. 또 앞으로는 경연도 하지 않겠다. 그냥 토론회를 하거나, 아니면 내가 친히 강의를 해 주겠노라! 그리고 이제는 왕명을 전달하는 승정원이 중요해질 것이니 그리 알라. 아, 또 있다. 앞으론 육조에서 의정부를 거칠 필요 없이 내게 직접 여러 일을 보고하고 직접 왕명을 받아 실행하라. 예전에 태종께서 이미 이러한 육조 직계제를 실시한 일이 있으니, 그 덕을 본받고자 하노라."
듣다 못한 아이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투덜거렸다. "뭐야, 자기편만 엄청 챙겨 주는 거네." "세종이 겨우 토론하고 공부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놓았더니 다 없애 버리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