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6/10 16:21:17
◇연구 위해 몸 안에 기생충 키우기도
"인체에는 세균이 100조마리 있어요. 세균과 함께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런데 기생충은 세균보다 덩치가 커서 눈에 보인다는 이유로 유독 미움을 받는 것 같아요. 세균 중에 우리 몸을 지켜주는 좋은 세균이 있는 것처럼, 기생충은 '면역'을 조절하는 기능을 하기도 해요. 진짜 나쁜 놈들은 메르스나 에볼라 같은 '바이러스'들인데…. 억울하죠."
서 박사의 설명은 이랬다. 우리 몸에는 외부 물질이 들어오면 달려나가 싸우는 면역세포라는 게 있다. 기생충이 들어오면 면역세포들이 들고일어나 싸운다. 기생충은 '우리 그렇게 나쁜 놈 아니다'라며 면역세포를 설득한다. 기생충과 면역세포는 수만년 동안 아옹다옹하며 잘 지냈다. 그런데 요즘 기생충이 없어지면서 면역세포가 심심해졌다. 꽃가루만 들어와도 흥분해서 싸우는데 이게 바로 '알레르기'다. 그는 "기생충을 이용해 알레르기를 예방하는 연구가 실제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어릴 적 서민 박사는 '외톨이'였다.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못생겼다며 놀림을 받았다. 외모 콤플렉스 때문에 늘 고개를 푹 숙이고 다녔다. 친구도 잘 사귀지 못했다. 서울대 의대 본과 4학년 때 선택한 전공 '기생충학'은 그의 인생을 180도 바꿔놨다. 기생충학 교수의 부탁으로 실험실에서 연구를 돕다가 기생충의 매력에 빠졌다.
모든 과학 연구가 그렇지만 기생충 연구도 쉽지 않다. 멧돼지 기생충을 연구하기 위해 커다란 멧돼지를 하루에 한 마리씩 100마리 이상 검사한 적도 있다. 멧돼지 살을 절구에 찧고 가위로 잘라가며 기생충을 찾는 고된 작업이다. 인간의 기생충을 연구할 땐 직접 기생충을 먹기도 한다. "한번은 눈에서 자라는 '동양안충'이라는 기생충을 실험실에서 키워서 제 눈에 넣었어요. 그런데 환경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죽었어요. 동양안충이 눈이 큰 동물을 좋아하거든요(웃음)."
◇암세포 찾고 병 치료하는 기생충도
인간에게 감염되는 기생충은 200여종으로 알려졌다. 서 박사는 "인간을 숙주로 삼는 기생충은 대체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과거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많았던 '회충'과 '편충'도 수가 많지만 않다면 큰 문제가 없다고 했다. 몸속에서 흡수하는 영양분도 고작 밥알 몇 톨 정도에 불과하다. 문제는 다른 동물의 기생충이 우리 몸에 들어왔을 때다. 좌충우돌 정신을 못 차리고 몸속을 돌며 병을 일으킨다. 생선회를 먹었을 때 감염되는 '고래회충'이 대표적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기생충은 '광절열두조충'이에요. 몸길이가 5m나 되는 기생충계의 '장신'인데, 사람에게 별다른 증상을 일으키진 않아요. '회장'이라고 불리는 작은창자 맨 아랫부분에 몸을 바짝 붙여 사는데, 음식이 지나갈 때 방해하지 않겠다는 '아름다운 마음'을 느낄수 있죠.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영양분에 만족하며 최대한 인간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애쓰는 '기생충의 정신'을 아는 녀석이죠."
인류의 건강에 기여하는 '이로운 기생충'도 소개했다. '예쁜꼬마선충'은 후각이 뛰어나 암세포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예쁜꼬마선충을 이용해 암을 진단하는 연구가 일본에서 진행중이다. '편충'은 자기 면역이 자기 몸을 공격해 염증을 만드는 난치병인 크론병의 치료제로 쓰인다. "언젠가 크론병을 앓은 아이의 아버지에게 이메일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자기 집에서는 편충을 '편선생'이라고 부른다고요. 멸종되지 않고 끈질기게 살아남아 인간에게 좋은 일까지 하는 기생충. 참 기특하지 않나요?"
서 박사는 "어린이들에게 기생충에 대해 제대로 알리기 위해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책을 썼다"고 했다. 기생충 공원인 '파라지 파크'에 있던 기생충들이 지구 정복을 위해 인간과 대결을 펼치는 이야기다. "영화 '주라기 공원'을 보면 모기에서 공룡 DNA를 뽑아 공룡을 되살리잖아요. 기생충을 어떻게 걸어다니게 할까 고민하다가 '기생 유전자'를 억제하는 주사를 놔서 자유 생활을 할 수 있게 만들었어요. 아이디어를 내고 스스로 엄청 감동했어요(웃음)." 기생충이 '캐릭터'로 만들어져 사랑받는 그날까지, 더 열심히 기생충을 연구하고 알리겠다고 그는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