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로 그거다. 세종은 인재를 아주 잘 활용했던 왕이야. '인재가 길에 버려져 있는 것은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의 부끄러움이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던 세종은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면 신분도 가리지 않고 뽑아 썼어. 각 분야의 일을 가장 잘할 수 있는 사람에게 맡기고 그 일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것, 그게 바로 세종이 여러 분야에서 두루 큰 발전을 일굴 수 있던 비결이야."
"흠, 여러 분야의 전문가한테 일을 맡기는 거군요?" 이번엔 왕수재가 말했다.
"그렇지! 그냥 맡겨 두기만 한 게 아니라 일을 맡은 신하가 자신의 온 능력과 열정을 다해 최고의 결과물을 내도록 이끌었어. 세종의 눈높이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고려사'를 편찬한 과정을 보면 알 수 있어. 세종은 태조 때 쓰인 '고려사'에 잘못된 부분이 많다며 신하들에게 다시 쓰도록 했어. 그런데 신하들이 아무리 공을 들여도 세종은 만족하지 못했어. 이 부분은 이래서 부족하고, 저 부분은 저래서 다시 검토해야 한다며 여러 번에 걸쳐 수정하도록 했지. 결국 '고려사'는 세종이 죽은 뒤에야 완성을 할 수 있었어. 또 공부를 좋아했던 세종은 경연도 무척 자주 열었는데, 제아무리 최고의 학자들이라도 세종에게 '공부를 게을리한다'는 잔소리를 듣곤 했대."
"아주 깐깐한 임금님이셨구나." 장하다의 말에 용선생이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그렇다고 세종이 신하들을 몰아세우기만 한 것은 아니야. 세종은 신하들과 토론을 즐겨한 왕으로 알려져 있어. 학문 토론만 한 것이 아니라 나랏일을 결정할 때도 늘 깊이 있는 토론을 거쳤지. 신하들이 왕의 생각에 반대할 때는 몇 번이고 자신의 주장을 설명하며 끝까지 신하들의 의견을 물었어. 그렇지만 반대 의견이 옳다는 결론이 나오면 왕의 힘으로 누르려 들지 않고 기꺼이 받아들였지. 이러니, 신하들도 토론에 대충대충 참여하거나 스스로 맡은 일을 게을리할 수가 없었겠지? 세종은 이렇게 신하들이 제 역할에 충실할 수 있도록 바탕을 다지는 한편, 신하들의 권한도 보장해 줬어. 태종이 나랏일을 처리할 때 육조에서 의정부를 거치지 않고 왕에게 직접 보고하도록 했던 것 기억하지? 세종은 이 제도를 다시 고쳐서 의정부가 육조의 보고를 받아 나랏일을 처리하는 데 앞장서도록 했어. 왕에게 집중되어 있던 권한을 신하들과 나누어 가진 거라고 볼 수 있지. 자, 그럼 세종 시대에 과연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발표를 시작해 볼까나? 먼저 세종이 특별히 가려 뽑은 인재들이 모여 있던 집현전에 대한 곽두기 학생의 발표입니다!"
용선생의 소개와 함께 잔뜩 긴장한 곽두기가 걸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