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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이거냐, 저거냐… 그것이 문제로다' 난 왜 결정하는 게 두려울까

2015/05/24 16:19:09

#1

엊그제, 외출했던 엄마가 갑자기 얼굴이 벌게져서 들어오셨다. 한 모임에 나갔는데 우연히 한 대학의 교육학과 교수님을 뵙게 됐다고 했다. 엄마는 이때가 기회다 싶어 교수님께 내가 어떻게 공부하는지 설명하고 맞게 하는 건지 확인해본 모양이다.

여태껏 난 엄마의 계획표대로 공부해왔다. 핵심 내용이 정리된 서머리 노트도 엄마가 구해주셔서, 이를 중점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교육 전문가들의 상담을 자주 받는 엄마가 이 학습 계획표와 서머리 노트만 있으면 성적이 오른다고 했으니까.

하지만 교수님은 엄마의 질문을 듣고 한 소리 하셨단다. 지금과 같은 방법을 고수했을 때, 아이는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다면 절대로 혼자 공부할 수 없을 거라고. 어쩌면 엄마가 아이의 미래를 망치는 걸지도 모른다고. 그게 무슨 말이지?

아무튼 엄마는 엄청난 충격을 받으셨나 보다. 이제부터 개입하지 않겠다며, 스스로 학습 계획을 짜서 공부하라고 하셨다. 오늘은 엄마의 간섭이 사라진 지 3일째. 하지만 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엄마의 계획표대로 하지 않으면 성적이 떨어질 것만 같다. 반대로 교수님 말씀대로 하지 않으면 나중에 크게 후회할 것도 같다. 내게 이러한 시련이 찾아오다니. 내 고민을 카페에 올려봐야겠다. 누군가가 결정해주겠지….

#2

오늘은 체험학습을 가는 날이다. 그런데 어제 야근을 하고 늦게 온 엄마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몇번을 흔들었더니 그제야 깨셨다. 뒤늦게 시간을 보곤 엄청난 속도로 출근 준비를 하신다. 날 신경 쓸 여력은 없어 보인다. 나도 바쁜데….

옷장 앞에 멀뚱멀뚱 섰다. 뭘 입을지 모르겠다. 엄마한테 물었더니 아무거나 입으란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어제 입은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었다. 엄마가 골라준 거니까.
준비를 마치고 현관을 나서려는데, 엄마가 어제 입은 걸 또 입으면 어떡하느냐며 버럭 화를 내셨다. 치, 아무거나 입으라고 했으면서. 앞으로 이런 일이 생기면 엄마를 일찌감치 깨워야겠다. 안 그랬다가는 또 화낼 게 뻔하니까.

◇나는 왜 ‘결정’을 못할까?

어린이·청소년 사이에서 햄릿 신드롬이 번지는 이유는 부모의 과잉보호 때문이다. “핵가족화가 된 요즘, 부모와 자녀는 지나치게 밀착해 있는 상황입니다. 따라서 부모는 자녀에게 선택 기회를 줄 일이 많지 않아요. 그러는 사이에 자녀의 판단력은 흐려지는 거죠. ‘선택’을 해본 경험이 많지 않으니, 당연히 ‘결정’할 수 없겠죠? 그러는 사이에 자녀는 점점 결정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생긴 거예요.”

어린이들에게 주로 나타나는 햄릿 신드롬의 유형은 앞선 사례 1·2를 통해 확인해볼 수 있다. 첫째 사례는 의존적인 성격 때문에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타입. 손 원장은 “사례 1은 역시 부모의 과잉보호가 원인이다. 자녀의 선택 기회를 부모가 뺏는 일이 많아지면서, 아이가 자율성을 잃어버린 것”이라고 했다. 둘째는 비난에 대한 두려움으로 선택하지 못하는 유형이다. 손 원장은 “아이가 어떤 선택을 했을 때 부모로부터 여러 번 꾸중을 들었다면, 그게 학습이 돼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자녀 입장에선 꾸중을 듣지 않기 위해 선택을 하고 싶지 않게 된 것”이라고 했다.

◇작은 것부터 ‘선택’해 보세요!

그렇다면 햄릿 신드롬을 극복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손 원장은 “좀 더 어린이들이 과감해질 필요가 있다”고 했다.

“여러분이 어렵게 선택했던 기억을 한 번 다시 떠올려 보세요. 지금 생각해보면 대부분 아무것도 아닌 일일 거예요. 좀 더 자신감 있게 선택하면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그래도 결정이 어렵다면, 작은 일부터 도전해보세요. 음료수 고르기, 식사 메뉴 정하기, 앞선 사례의 옷 고르기도 좋고요. 반복적으로 이러한 훈련을 하다 보면 언젠가는 중요한 선택을 스스로 할 수 있겠죠? 아이가 생각하기에 그래도 부모의 간섭이 지나치다면, 설득을 한 번 해보세요. 내가 왜 이런 결정을 해야 하는지 부모님께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거죠. 이러한 노력·용기가 없다면 자기 자신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결정한 삶을 살 수도 있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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