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밑에 아인슈타인도 있었고 이휘소도 있었지만 아인슈타인보다 이휘소가 더 뛰어났다"(오펜하이머, 전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소장) "이휘소는 현대물리학을 10여년 앞당긴 천재다. 이휘소가 있어야 할 자리에 내가 있는 것이 부끄럽다"(압두스 살람, 1979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그만큼 현대물리학계에서 발군의 실력자였다. 1977년 42세란 젊은 나이에 교통사고로 사망하지 않았다면, 그가 훗날 노벨물리학상을 받았을 것이란 사실에 이견이 없다. '게이지이론의 재규격화'를 통한 소립자물리학의 표준모형 확립, '참(charm) 입자 탐색'이 주요 업적. 이를 토대로 한 연구에 이미 세 번이나 노벨상이 주어졌다. 각 입자의 질량을 결정하는 '신의 입자'에 '힉스 입자'란 명칭을 붙인 사람도 그다. 해당 이론을 맨 처음 제시한 영국 물리학자 피터 힉스의 이름을 따 1972년 '힉스 입자에 미치는 강력의 영향'이라는 논문을 발표, 관련 이론을 전개했다.
1935년 서울에서 태어난 이휘소는 중학교 때부터 과학에 흥미를 느껴 1953년 서울대학교 화학공학과에 입학했다. 이후 미국 유학길에 올라 마이애미대 물리학과를 1년 반 만에 수석으로 졸업했다. 프린스턴 고등연구원 연구원, 펜실베이니아대·뉴욕주립대 교수, 페르미가속기연구소 이론물리학 연구부장 등을 지냈다.
석주명(1908~1950)|생물학
한국 나비의 70% 이름 붙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