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곽두기가 얼른 "동대문! 서대문! 남대문! 북대문!" 하고 외쳤다. 그러자 왕수재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그건 아니지. 남대문이 아니라 숭례문! 그리고 아까 저 문 이름도 숙정문이랬잖아."
"맞아. 두기가 말한 이름이 쉽고 친숙하긴 한데, 4대문의 정식 이름은 따로 있어. 동, 서, 남, 북, 차례로 흥인지문(興仁之門), 돈의문(敦義門), 숭례문(崇禮門), 숙정문(肅靖門)이야. 숙정문은 소지문(昭智門)이라고도 불렀어. 이걸 동대문, 서대문 하고 부르기 시작한 건 일본 침략기에 일본 사람들이 그렇게 퍼뜨렸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어. 원래의 멋진 이름 대신 일부러 시시한 이름을 붙여서 깎아내리려고 말이야. 하지만 그건 잘못 알려진 이야기고, 조선에서도 두 가지 이름을 다 사용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 조선은 신분 구별이 엄격했기 때문에 양반들은 정식 이름을 부를 수 있었지만 평민이나 천민들은 그 이름을 쓸 수 없었다는 거야. 그래서 그냥 동서남북 네 방향을 붙여서 불렀다는 거지. 4대문의 이름은 성리학의 기본 원리를 담고 있는 이름이야."
"성리학의 기본 원리? 그게 뭔데요?" "한 나라가 만들어지고 잘 유지되려면 필요한 게 많겠지? 그중에서도 꼭 필요한 것이 바로 사상이야. 조선을 세우는 데 앞장선 신진 사대부들은 새 나라를 철저히 성리학의 원리에 따라 다스리고 싶어 했어. 물론 고려 때도 성리학이 중요하긴 했지만, 고려는 불교의 나라였기 때문에 성리학보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먼저였어. 게다가 고려 말기에는 절들이 대토지를 차지하고 많은 노비들을 거느렸어. 또 승려는 세금을 내지 않는 신분이었기 때문에 불교에 뜻이 없으면서도 절에 들어가 승려 노릇을 하는 이들이 많았어. 자연히 다른 백성들의 부담이 더욱 커졌지. 그래서 조선은 여러 가지 제도를 통해 불교를 억누르고자 했어."
"억눌렀다면… 혹시 스님들한테 벌을 주었나요?" 며칠 전 엄마를 따라 절에 다녀온 곽두기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벌을 준 건 아니고, 승려가 될 수 있는 조건을 까다롭게 내걸고 승려의 특권을 빼앗아서 승려의 수가 확 줄어들도록 했어. 절에서 토지를 소유하지 못하도록 제도를 고치고, 도성 안에는 절이 세워지지 못하도록 했고. 왕사, 즉 왕을 가르치는 스승도 승려가 아닌 성리학자들로 바꾸었어. 또 성리학의 가르침들을 책으로 펴내 널리 퍼뜨리는가 하면 법도 새로 고쳐서 성리학이 백성들의 생활 속으로 파고들 수 있도록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