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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 취재] 90세 할머니의 초등학교 생활기

2015/03/17 16:03:13

배움에 나이는 없다

양원초는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4년제 초등학교다. 2005년 문을 열었으며, 올해 350명의 입학생을 받았다. 그중에서 김씨는 나이가 가장 많다. 역대 최고다. 그렇다고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을 상상하면 곤란하다. 홀로 지하철을 30여분 타고 통학할 정도로 정정하다. 환한 미소 탓인지 얼굴은 70대처럼 보인다.

"어젯밤에 새벽 1시까지 숙제를 했어요. 학교에 입학한 소감을 글로 써보라는 거였는데, 내가 읽는 건 더듬더듬할 수 있어도 쓰는 건 못하니까…. 아들한테 도움을 받았지 뭐. 그걸 바탕으로 하는데도 숨이 턱턱 막히더라니까. 결국 물 한 모금 마시고 잠들었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가까스로 마무리했지(웃음)."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그의 고향은 지금은 북한 땅인 황해도 서흥이다. 6·25전쟁 때 남한으로 피란 내려와 서울에 정착했다. 학교는 문턱도 못 밟아봤다. 어린 시절, 그의 아버지는 "내 자식을 일본인이 가르치는 학교에 보낼 수 없다"고 늘 입버릇처럼 말했다. 두 오빠는 독립운동에 몸담았다.

"그때 생각만 하면 지금도 눈물이 나요. 새파랗게 젊은 일본 순사가 수시로 들이닥쳐 농작물이나 길쌈한 걸 빼앗아 갔거든. 숟가락, 놋그릇까지 말이오. 막아설라 치면 나이 지긋한 노인도 욕하고 때렸지. 난 엄마를 도와 집안 살림을 하며 유년 시절을 보냈어요. 동생들을 업어 키우고, 뜨개질로 내복 등을 해 입혔지요."

결혼해서는 아들 셋 딸 하나를 키우느라 정신없이 살았다. 넉넉지 않은 가정형편에 보탬이 되고자 안 해 본 일이 없다. 광주리 이고 다니며 생선도 팔고, 간병인으로도 일했다. 김씨는 "정말 열심히, 열심히 살았다"고 말했다. "자식들을 시집 장가 보낸 뒤에서야 나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생기더라고요. 마음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던 '학교 다니고 싶다' '배우고 싶다'는 소망을 이제야 꺼내게 됐어요."

자식들은 늦깎이 초등학생이 된 어머니의 용기에 박수를 보냈다. '열혈 응원단'이기도 하다. 그는 "오늘 아침에도 아들들이 번갈아 전화 왔다. 글자 또박또박 띄어서 쓰라는 등 잔소리를 하더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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