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애벌레가 소나무를 쓰러뜨린다
우리나라에서 소나무재선충병이 처음 발견된 곳은 부산 동래구 금정산이다. 1988년 일본 소나무를 수입하는 과정에서 한국에 넘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소나무재선충병은 실처럼 가늘고 긴 '소나무재선충' 때문에 발생한다. 이 선충의 길이는 0.6~1㎜에 불과하지만, 작다고 얕보면 큰 코 다친다. 나무에 들어가면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소나무재선충의 무기는 '막강한 번식력'. 암수 한 쌍이 교미해 20일 후면 20여만 마리까지 수를 늘린다. 수많은 선충은 나무 내부에서 수분과 영양분의 이동 통로(가도관)를 막는다. 입에 있는 뾰족한 침으로 세포를 콕콕 찍어 그 안에 담긴 양분을 빨아먹기도 한다. 결국 나무는 감염 1개월 후 잎 전체가 갈색으로 변하면서 말라 죽는다.
소나무류 중 주된 피해종은 소나무·해송·잣나무다. 이유는 단순하다. 세 나무가 다른 나무보다 면역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전향미 국립산림과학원 산림병해충연구과 임업연구사는 "소나무류는 벌레가 몸에 침입하면 송진을 분비한다. 끈적끈적한 액체로 방어벽을 치는 것이다. 그런데 세 나무는 송진이 비교적 적게 분비돼 제대로 벌레를 막지 못한다. 이렇게 나무 안으로 들어간 소나무재선충은 방어진을 못 치도록 제일 먼저 송진이 나오는 통로를 막는다"고 했다.
소나무재선충은 스스로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없다. 매개 곤충인 솔수염하늘소와 북방수염하늘소의 몸에 붙어 이곳저곳을 옮겨 다닌다. 소나무재선충은 고사목(枯死木)에서 매개 곤충이 자랄 때 몸속으로 들어가 기생한다. 이후 다 자란 매개 곤충이 건강한 소나무나 잣나무를 갉아먹을 때 나무 조직 내부로 침입한다.
매개 곤충이 이동하는 거리는 3~4㎞. 강풍이 불 때도 최대 10㎞까지밖에 못 움직인다. 소나무재선충병이 기존 발생지로부터 수십㎞ 떨어진 곳에서도 생기는 이유는 사람에 의한 인위적인 이동 때문이다. 감염목을 무단으로 옮기면서 그 안에 있던 소나무재선충과 매개 곤충이 함께 이동, 피해가 전국으로 확산되는 것이다. 소나무재선충병으로 죽은 나무를 이동시키지 말고 완전히 제거해야 하는 이유다.
◇우리나라 산림의 26%, 소나무류 나무를 지켜요
산림청은 매개 곤충의 생활사에 맞춰 방제를 실시하고 있다. 매개 곤충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5~8월에는 지상 또는 항공에서 살충제를 뿌린다.
그 외 매개 곤충이 나무에 서식하는 시기에는 나무를 자르고 불에 태우거나 1.5㎝ 이하 크기로 잘게 부숴 버린다. 고사목을 베어서 쌓고, 방제약을 뿌린 뒤 신속히 비닐(타포린)을 씌워 훈증 처리하기도 한다.
소나무재선충병의 '골든 타임'은 발생 직후 1~2년. 그 사이 적극적인 방제가 이뤄지면 '소나무재선충병 청정지역'으로 돌아갈 수 있다.
우리나라 산림면적 중 소나무와 잣나무 등 소나무류가 차지하는 비율은 26%다. 훌륭한 역사·문화·관광자원이자 송이·잣 생산 등 연간 약 996억원의 경제적 효과를 창출하는 효자 나무들이다. 이 중 23%를 차지하는 소나무는 애국가에도 등장할 만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나무다.
이러한 소나무류 나무의 소나무재선충병 피해를 막기 위해 어린이들이 할 만한 일도 있다. 전 임업연구사는 "감염된 나무를 발견하면 즉시 국번 없이 1588-3249로 신고해야 한다. 피해목에 씌워놓은 비닐을 들추거나 막대기로 찔러 구멍을 내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