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2/09 17:03:44
◇우리 손으로 만든 첫 자동차
시발차. 국산 자동차의 시조(始祖)다. 오해하기 십상인 발음과 달리, 뜻은 순수하고 희망적이다. '첫출발'이란 뜻이다. 출시 직후엔 이름 좋다는 평도 들었다고 한다.
제작은 개인이 주도했다. 자동차 정비업자인 최무성·혜성·순성 3형제와 당시 국내 유일의 엔진 기술자였던 김영삼씨가 함께 만들었다. 이들은 미군이 쓰던 드럼통을 자르고 펴서 차의 몸체를 만든 뒤, 미군 지프(Jeep)차의 엔진을 달아 완성했다. 6·25 전쟁 직후여서 재료는 곳곳에 널려 있었다. 이른바 '재활용차'다. 부품은 대부분 외산(外産)이지만, 우리 기술로 제작했기 때문에 '최초의 국산차'로 통한다.
단점은 제작 기간이다. 한 대 만드는 데 넉 달이나 걸렸다. 모든 작업이 수제(手製)로 진행된 탓이다. 값도 비쌌다. 판매 가격은 8만환. 당시엔 쌀 90가마니를 살 수 있는 돈이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줄을 섰다. 1955년 10월 열린 '산업박람회'에서 시발차가 대통령상을 받으며 국민적인 관심을 끈 덕분이다. 당시 부유층에서 이 차를 사기 위해 계(契)까지 만들 정도였다.
하지만 역사는 짧았다. 출시 8년 만인 1963년, 총 2000여 대 생산을 끝으로 단종됐다. 정부가 1957년부터 석유 파동을 우려해 자동차 등록 대수를 제한했고, 1962년 신형 자동차인 '새나라'가 시발차의 자리를 대신하면서 쓸쓸히 사라졌다.
◇국산차 제작 서서히 활발… 첫 독자 모델 '포니' 탄생
1960년대 들어서 국산차 제작에 붐이 일었다. 시발차의 성공으로 자신감이 생긴 덕분이다. 1962년엔 자전거를 만들던 기아산업(현 기아자동차)이 국내 최초의 세 바퀴 화물차 'K-360'을 내놨다. 1966년엔 현대자동차(현대차)가 자사 첫 차량인 '코티나'를 공개하며 시장에 뛰어들었다. 하동환 자동차공업주식회사(쌍용자동차의 전신)와 신진자동차(한국GM의 전신)도 잇따라 신차를 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