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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되찾은 미소에 감격… 도울 수 있어 행복합니다"

2014/12/09 09:25:55

"(상 받을) 자격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제 본업이 얼굴 기형을 가진 어린이를 수술하는 거잖아요. 단지 더 어려운 처지에 놓인 이들을 위해 했을 뿐인데…. 더 열심히 하라는 격려의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성성한 백발에 얼굴 가득 인자한 미소를 띤 채 백롱민 교수가 말했다. 겸손한 말과 달리 그가 한 일은 실로 엄청나다. 그동안 무료 수술해 준 얼굴 기형 어린이가 국내 1200여명, 베트남 3500여명에 달한다. 2003년부터는 우즈베키스탄·몽골·인도네시아로 활동 범위를 넓혔다.

시작은 형인 백세민(71세) 박사와 함께였다. 백 박사는 우리나라 얼굴 기형 수술의 발전을 이끈 핵심 인물이다. "지금과 달리 1980년대 중반 무렵엔 대부분의 얼굴 기형 수술이 의료보험이 안 됐어요. 본인 부담이 커 수술을 포기하는 환자가 많았죠. 형은 이 같은 현실을 무척 안타까워했어요."

고민 끝에 백세민·롱민 형제는 1989년부터 의료봉사 동호회를 운영했다. 의과대학 교수들과 함께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가정 형편이 어려운 얼굴 기형 어린이를 수술해줬다. 1995년엔 사단법인 세민얼굴기형돕기회를 조직해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다.

"첫 해외 봉사지는 베트남입니다. 1996년에 처음 가서 내년이면 벌써 20년이네요. 초창기엔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요즘처럼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아 정보 교환이 쉽지 않았거든요. 전기를 몇 볼트 쓰는지, 수술대와 물은 있는지…. 전화가 먹통일 때가 잦아 주로 팩스로 의사 소통했지요."

현지 사정은 열악했다. 수술방을 새로 꾸며야 하는 상황. 40도를 웃도는 무덥고 습한 날씨까지 발목을 잡았다. 하지만 백 교수는 아이들의 눈망울을 보면서 힘을 냈다. 아침 8시에 시작해서 밤 10시까지 이어지는 강행군에도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식사 시간을 제외하고는 계속 수술만 했어요. 베트남 방문 첫해엔 열흘가량 머물면서 하루에 30명가량 수술했습니다. 힘들긴 했지만 동행한 의료팀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 '행복하다'였어요. 한국에선 진료나 수술 외에도 신경 쓸 업무나 일이 많은데, 이곳에선 오롯이 환자를 돌볼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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