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2/03 15:54:56
끝까지 가정을 지키려 했다?
박경실 회장 기사를 요약하면 이렇다. 지난 9월 28일 둘의 이혼소송에 대한 1심 판결이 났다. 직후 본지에선 박 회장의 자택을 찾았다. 박 회장은 인터뷰에서 “끝까지 가정을 지키려 했다. 가능하면 다시 가정을 되찾고 싶고, 고 전 회장과는 여전히 가족이고, 종국에는 (고 전 회장과) 함께할 수밖에 없을 거다. 남편이 이혼소송을 한 데 대해 굉장히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 외에도, 연애 초기 및 결혼 과정, 그리고 함께 학원을 운영하던 시절에 대한 이야기도 실었다. 그때만큼은 알콩달콩하게 그려졌다.
“끝까지 가정을 지키려 했다고요? 그런 사람이 한평생 파고다를 위해 일해오고 파고다를 설립한 남편을 내쫓습니까? 절 내쫓고는 어떻게 했습니까. 그 자리(회장직)에 본인이 앉았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큰딸까지 내보내고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45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일하면서 자식처럼 키운 학원을 아내에게 모두 빼앗겼습니다.”
결혼 직후부터 엇나간 부부 사이
둘은 지난 1978년 처음 만났다. 당시 고 전 회장은 35살인 이혼남이었다. 전부인과의 아이도 둘이나 있었다. 그때 박 회장은 23살이었다. 지인을 통해 테니스를 치며 만났던 둘은 이듬해 결혼했다. 전부인 사이에서의 남매와 박 회장이 결혼 후 낳은 1녀까지 총 3남매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 한데 둘의 결혼생활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다. 박경실 회장은 “2004년께부터 둘 사이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면서 “큰딸(전부인 사이에서의 딸 고은○ 씨)이 생모가 아닌 걸 안 시점부터 삐뚤어지기 시작해, 부부 사이에 갈등이 일어났다”고 했다.
그러나 고 전 회장은 이에 대해서도 할 말이 있다고 했다.
“이제와 가만히 돌이켜 보면 결혼 초반부터 부부간 맞지 않았지만 죽을 만큼 노력하면 고쳐질 줄 알았는데, 그게 잘못입니다. 현재의 가사소송의 이유가 마치 부부 사이엔 아무 문제 없는데 큰딸이 생모가 따로 있다는 사실을 안 이후부터 돌변해서인 것처럼 비쳐지는데요, 큰딸은 제가 생후 7개월부터 키워오다 3살부터 박경실 씨를 엄마로 만났기 때문에 박 씨를 평생 엄마라고 믿은 아이입니다. 딸아이가 삐뚤어진 게 아니고요, 박 씨가 큰딸과 막내딸을 심하게 차별했습니다. 알다시피 큰아들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잖습니까.(큰아들은 지난 1994년 자살했다. 박 회장은 학교폭력으로 자살했다고 한 언론을 통해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고 전 회장은 자살 이유에 대해선 함구했다.) 그런데 큰딸마저도 똑같이 잃을 순 없잖습니까.”
이날 인터뷰 장소에는 큰딸 고은○ 씨도 함께 있었다. 그는 이따금씩 옆에서 고 전 회장의 얘기를 거들었다. 그러다 박 회장의 이름을 언급할 때는 진정하기 힘든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엄마(박 회장)에 대한 배신감에 자살 시도를 여러 번 했다”면서 “그런데 저보고 ‘쟤 쇼하는 거’라면서 비웃었다”고 했다.
앞서 박경실 회장은 고 전 회장이 데려온 남매를 친자식처럼 돌봤다고 말했다. 큰딸인 고은○ 씨는 “태어나서 한 번도 엄마와 나란히 TV를 시청한 일이 없는데, 그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자살을 시도한 날, 파고다 직원들과 회식을 하러 가더라고요. 자살 기도에 실패하고 다음 날 학원에 출근했을 땐, 직원들에게 ‘걔 왔냐?’라고 물어봤다고 하더라고요. 그 밖에도 저 없는 자리에서 제가 정신이 조금 아픈 애라고 소문을 내기도 했고요. 결국 작년에 학원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 전 회장은 “대놓고 큰딸을 비웃는 것을 보고 이혼을 결심하게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