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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한국사] 반란 일으킨 무신, 문신 몰아내고 정권 잡다

2014/11/16 16:22:19

의종의 나들이와 무신들의 모욕

고려 18대 왕인 의종은 툭 하면 궁궐 밖으로 나들이를 나가 경치 좋은 곳에서 문신들을 좌우에 거느리고, 술 마시고 시를 읊으며 시간 가는 줄 몰랐어. 아예 궁궐에는 돌아갈 생각도 하지 않았어. 왕이 문신들과 함께 놀고 있는 동안, 무신들은 보초를 서면서 이들을 호위해야 했어. 제대로 먹지도 쉬지도 못하고 말야.

1170년 8월 30일, 이날도 의종은 신하들을 거느리고 나들이를 나섰단다. 전날 밤은 흥왕사라는 절에서 자고, 이날은 보현원으로 향했어. 보현원은 의종이 퍽 좋아하는 곳이었지. 길을 가던 의종은 오문이란 곳에 이르러 행차를 멈추게 하고 잔치를 벌였어. 무신들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보초를 서며 호위를 했지. 분위기가 무르익자, 의종이 말했어. "여기가 바로 군사들을 훈련시킬 수 있는 곳이로군!"

그러면서 무신들에게 오병수박희를 시켰단다. 오병수박희란 당시 무신들이 즐겨 하던 무예로 택견과 비슷한데, 발보다는 주로 손을 써서 상대를 공격하는 것이 택견과 다른 특징이야.

이윽고 오병수박희가 시작됐단다. 무신 중에 이소응이라는 나이 많은 장군이 있었어. 정3품의 높은 직책을 맡고 있었지. 이소응은 젊은 무신과 겨루게 됐어. 나이가 많은 이소응은 적당히 겨루다가 힘이 부쳐서 기권을 했단다.

그때였어. 왕의 총애를 받고 있던 한뢰라는 젊은 문신이 이소응의 뺨을 후려쳤어. 이소응은 졸지에 뺨을 맞고 그만 섬돌 아래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단다. 왕을 비롯해 구경하던 문신들은 재미있다는 듯이 손뼉을 치며 깔깔 웃었어. 이 꼴을 본 정3품 상장군 정중부는 괘씸함을 참을 수가 없었단다.

문득 정중부의 머릿속에는 20여 년 전의 치욕이 되살아났어. 정중부가 서른아홉 살로 견룡군 장교였을 때야. 정중부는 왕을 모시고 나례에 참석했어. 나례는 귀신을 쫓는 의례인데, 왕과 신하들이 참석하여 온갖 재주를 펼치며 유쾌하게 노는 자리란다. 그런데 갑자기 내시 김돈중이 정중부의 턱밑에 촛불을 들이대는 바람에 정중부가 애지중지하던 수염이 타 버렸어. 김돈중은 김부식의 아들로, 아버지의 위세를 믿고 기세가 등등한 인물이었지. 정중부는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었지만 꾹 참을 수밖에 없었어.

이제 정중부는 65세의 노장이 됐어. 우람한 체격에 넓은 이마, 백옥처럼 흰 얼굴에 수염이 멋진 장군으로 무신들의 신망을 한몸에 받고 있었지. 정중부는 더는 참지 못하고 소리쳤어. "이소응이 비록 무신이지만 벼슬이 정3품인데 어째서 이렇게 심한 모욕을 주는가!"

정중부의 분노에 찬 목소리를 듣고 찔끔한 왕은 정중부의 손을 잡고 달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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