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우가 만물상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추기경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고 들었어. 김수환 추기경님 정도라면 아주 어릴 때부터 신부가 꿈이었겠지."
당연한 걸 왜 묻느냐는 표정으로 수지가 말했다.
만물상 할아버지가 말을 이었다.
"사실 김수환 추기경이 어렸을 때는 신부가 되는 것보다는 장사를 해서 돈을 많이 벌고 싶어 했다고 해."
"장사요?"
수지는 김수환 추기경의 꿈이 돈을 버는 것이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김수환 추기경의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집이 많이 어려웠거든. 그래서 어머니 혼자 옹기장수와 떡장수를 하면서 여덟 형제를 키우느라 고생을 많이 하셨지. 김수환 추기경은 돈을 많이 벌어 어머니를 잘 모시고 싶었던 거야."
그때 갑자기 낯선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그럼, 효자 중의 효자라고 할 수 있지."
"아니! 여사님, 언제 오셨어요?"
"조금 전에 왔는데, 너희가 할아버지 말씀 듣느라 정신이 없더구나."
동양화방을 운영하는 김 여사였다.
"김수환 추기경은 어려서부터 계획이 있었어. 보통학교를 졸업하면 읍내 상점에 취직해 장사하는 걸 배우는 거였지. 장사를 해서 돈을 많이 벌어 어머니를 편하게 모시면서, 스물다섯 살이 되면 장가를 간다는 계획이었단다."
"하하, 추기경님이 장가를요?"
"그랬단다. 어릴 적 생각 때문인지 신부가 돼서도 저녁밥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집을 보면 왠지 부럽다고 하셨어."
"추기경님도 결혼하고 싶어 하셨구나."
수지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장가가는 게 꿈이었는데 어떻게 신부님이 되신 거예요?"
고개를 갸우뚱하던 선우가 물었다.
"어머니의 신실한 믿음 때문이란다."
만물상 할아버지가 말했다.
"추기경의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어렸을 때부터 성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신앙심을 키우게 하셨어."
김 여사가 만물상 할아버지 말을 뒤이어 받았다.
"신앙심뿐만 아니라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도 가르치셨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남에게 '아비 없는 자식'이라는 소리를 들어서는 안 된다면서 더 엄격하게 키우셨지."
"추기경님은 공부도 잘하셨겠죠?"
수지는 매일 공부해라, 공부해라 잔소리를 하는 엄마를 떠올리며 물었다.
"아니, 추기경은 낙제한 적도 있는 걸?"
"낙제요?"
김 여사의 말에 선우는 괜히 싱글거리며 좋아했다. 수지 역시 생각하지도 못했던 이야기라 놀란 눈치였다.
"보통학교 5학년을 마칠 무렵, 추기경은 형의 뒤를 이어 대구에 있는 성유스티노 신학교 예비과에 진학했어. 성유스티노 신학교 예비과는 지금으로 말하면 초등학교 5, 6학년 과정이야. 그런데 성유스티노 신학교로 옮길 때 성적이 좋지 않았는지 추기경은 5학년부터 다시 공부했단다. 5학년을 두 번 다녔으니 낙제지 뭐냐."
"여사님, 추기경님이 낙제를 한 번 하고 난 다음에는 어땠어요?"
공부에 관심이 많은 수지가 물었다.
"어떤 꾀요?"
"김수환 추기경은 어느 날 새로 갈아입은 윗옷 주머니에 1전짜리 동전이 있는 걸 보고는 꾀를 냈어. 신학교 학생은 돈을 가지고 있으면 안 됐거든. 가진 돈은 모두 담임 신부님께 맡겨야 했지. 만약 돈을 가지고 있다 들키면 집으로 쫓겨났단다. 추기경은 '이거다!'하고는 일부러 동전을 눈에 잘 띄는 자리에 놓아두었지. 그런데 이상하지? 동전이 온종일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거야. 담임 신부님도 김수환 추기경을 부르지 않았지. 그래서 '틀렸구나!'라고 생각하곤 동전을 학교 담장 밖으로 던져 버렸어.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려던 계획은 실패하고 말았어. 이는 추기경이 어린 시절 신학을 놓지 못하고 계속 하게 된 대표적인 일화 중 하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