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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한국사] 나라에서 운영한 '시전'엔 온갖 가게가 있었죠

2014/10/12 16:17:25

나라에서 운영하는 시전 말고도 일반 사람들이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이 따로 있었어. 도성 주변에 사는 농민들이 직접 농사지은 야채와 과일, 틈틈이 만든 짚신 같은 생활용품을 일반 시장에서 사고팔았단다.

개경의 장사꾼은 수완 좋고 장사 잘하기로 유명했어. '개성상인'이란 말 들어봤니? 개성은 개경의 다른 이름이란다. 개경은 또 송도라고도 불렸어. 장사꾼의 원조 하면 송상, 즉 개성상인을 꼽을 정도로 개성상인은 장사에 뛰어났어. 개경에서는 상인을 '가게쟁이'라고 불렀다고 해. 이 '가게쟁이'에서 '깍쟁이'란 말이 나왔단다.

개성상인들의 장사 수완은 조선 시대까지도 유명했어. 송상이라면 모두들 알아주었단다. 송상은 앞서 가는 사람들이었어. 일찍부터 동전을 만들어 썼고, '사개송도치부법'이라고 불리는 회계 장부 정리법을 고안해 냈단다. 사개송도치부법은 '송도 부기'라고도 하는데, 오늘날 회사에서 사용하는 장부 정리법과 원리가 같았어.

◇개경의 이모저모

고려는 약 500년 동안 계속된 나라였어. 그 500년 동안 개경은 수도로서 나라의 중심 노릇을 했단다. 신라의 수도 금성은 한반도의 동남쪽에 치우쳐 있었지만, 개경은 한반도의 중간 부분에 자리 잡았어.

지도를 보면, 개경을 가운데 두고 그 양쪽으로 예성강과 임진강이 흐르다가 동쪽에서 온 한강과 만나 함께 황해로 들어간단다. 그래서 개경은 교통의 중심지였어.

고려 시대 개경의 인구는 얼마나 되었을까? 1232년 무렵에 10만 호가 살았다고 해. 한 호는 지금의 한 집과 같은 뜻이야. 한 집에 평균 다섯 식구가 살았다고 치면 13세기 초반 개경의 인구는 약 50만으로 추측할 수 있어. 같은 때 이탈리아에서 손꼽히던 도시 피렌체의 인구가 약 10만이었다고 하니, 개경이 얼마나 큰 도시였는지 알 수 있겠지?

개경은 개성, 송도, 송악이라고도 불렸어. 모두 개경을 감싸 안고 있는 송악산에서 나온 이름이야. 날씨가 아주 맑은 날, 서울의 높은 곳에 올라가면 아스라하게 송악산이 보인단다. 그렇게 가까이 있는데도 마음대로 갈 수 없으니 안타깝기만 하구나. 통일이 되면 우리, 개경으로 고려 시대 유적 답사를 가 보자.

★우리나라 최초의 화폐, 고려의 동전

우리나라 최초의 동전은 고려 때 만들어졌어. 요즘의 동전은 1원짜리부터 500원짜리까지 크기와 모양이 각각 다르고 가치도 다르지만, 고려 때의 동전은 크기와 모양이 거의 같고 가치도 같았단다. 즉 십 원짜리, 백 원짜리 하는 구별이 없었던 거야. 고려의 동전은 하늘을 상징하는 둥근 모양에 땅을 상징하는 네모난 구멍이 뚫려 있어. 이런 모양의 동전은 중국의 진시황 때 처음 만들어졌는데, 그 뒤로 우리나라와 일본 동전의 모델이 됐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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