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압록강을 넘어온 거란군의 총사령관 소손녕은 항복하라며 큰소리를 쳤어. 소손녕은 거란 왕의 사위였지. "우리 군사 80만이 도착했다. 만일 항복하지 않으면 기필코 섬멸해 버리고 말 테니 고려의 왕과 신하들은 빨리 항복하라."
거란군의 숫자에 놀란 고려 조정은 서경(지금의 평양) 이북의 땅을 떼어 주고 화해를 하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단다. 이때 서희가 반대하고 나섰어. "지금 거란이 침공해 온 까닭은 가주와 송성, 이 두 성을 뺏으려는 데 불과한 것입니다. 적들의 병력이 많은 것만 보고 서경 이북을 떼어 주는 것은 올바른 계책이 아닙니다."
그때 소손녕이 다시 한 번 사신을 보내 항복을 독촉했어. 그러자 고려 왕 성종이 말했단다. "누구 거란 진영으로 가서 말로 적군을 물리치고 공을 세울 사람이 없는가?"
서희가 일어나서 말했어.
"제가 왕명을 받들겠습니다."
성종은 서희를 강가까지 배웅 나가 손을 잡고서 격려해 줬어. 서희가 거란 진영에 도착하자, 소손녕이 말했단다. "나는 대국의 귀인이니 그대가 뜰에서 내게 절해야 하오."
"신하가 임금을 대할 때 뜰 아래서 절하는 것은 예법에 있는 일이지만, 양국의 대신이 만나는 자리에서 어찌 그럴 수 있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