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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역사 전쟁'] "유관순 열사를 교과서에서 뺀 것, 그게 역사 왜곡"

2014/08/28 03:01:50

이에 대해 박충순 백석대 유관순연구소장은 "친일 행위를 감추기 위해 유관순을 현양하고 과장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지적했다. 박 소장은 "신봉조 이화여고 교장, 박인덕 이화학교 교사가 해방 후 회고하면서 유관순이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맞지만, 1947년 유관순기념사업회가 발족했을 때 회장은 조병옥·오천석이었고, 고문으로 서재필·이승만·김구·이시영·김규식·최현배 등이 참여했다"면서 "해방 직후 극일(克日)의 정신을 민족정신으로 승화시키는 과정에서 유관순에 주목하게 된 것이지, 친일파가 만들어내거나 어느 한쪽(우파)에 치우쳐 이뤄진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1947년 11월 27일 충남 병천 아우내 장터 현지에서 열린 유관순 외 21의사(義士) 기념비 제막식에는 김구·이시영 등이 추모사를 했다.

유관순 행적, 과장됐다?

3·1 운동 전공 역사학자인 이정은 3·1운동기념사업회 회장은 "3·1 운동은 전 국민이 참여했지만 17세 소녀가 감옥에 갇혀서도 일관되게 독립을 주장하고 일제의 고문을 받아 죽은 사실은 우리 민족의 '독립 정신'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했다. 당시 일제의 경성재판소 복심(2심) 판결문에는 유관순의 이름이 가장 먼저 나온다. 이 회장은 "재판소 판결문에 1번이 유관순, 이어서 유관순의 삼촌인 유중무, 조병옥의 아버지인 조인원이 나온다"면서 "조인원·유중무보다 나이나 지위가 아래인 유관순이 1번이 된 것은 일제가 유관순을 가장 중대한 저항자로 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당시 재판 기록에는 유관순이 총검에 찔리면서도 '비무장 시위에 총기를 쓰지 마라'고 강력히 항의하는 내용 등이 담겨 있다"면서 "유관순은 일제 재판부에 의해 5년형을 선고받았는데 이는 손병희 선생이 받은 3년형보다 높은 것"이라고 말했다.

김구도 빼야 하나?

친일 전력이 있는 이들이 높이 평가한 인물이기에 교과서에 실릴 수 없다는 주장은 역사를 제대로 보는 태도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강규형 명지대 교수는 "친일파가 높이 평가했기 때문에 유관순을 기릴 필요가 없다는 말은 '1차원적 민족지상주의'"라면서 "친일 행적이 있는 이광수가 '백범 일지'를 썼다고 해서 김구 선생을 교과서에서 빼야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정진석 한국외대 명예교수는 "유관순이라는 역사 인물이 항일을 했느냐는 사실 여부가 중요한 것이지, 친일파가 높였기 때문에 안 된다는 주장은 옳지 못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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