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8/13 10:33:03
◇시체 씻겨주는 장례 문화, 에볼라 확산시켜
"1976년 어느 날, 아프리카 자이르(현 콩고민주공화국) 에볼라 강 근처에 있는 '얌부쿠'라는 마을에서 주민 한 사람이 열이 나더니 피를 토하고 며칠 만에 죽는 일이 생깁니다. 환자와 접촉한 의료진과 가족, 이웃까지 같은 증상을 보였고 열흘 만에 병에 걸린 사람 중 90%가 사망합니다. '에볼라 바이러스'의 시작이죠."
김 교수에 따르면 에볼라 바이러스는 아프리카에 사는 과일박쥐에서 원숭이를 통해 사람에게 감염됐다. 증상은 공포영화에서 보던 것 그대로다. 두통과 근육통이 생기고 열이 나다가 눈·코·입 등에서 피가 쏟아진다. 소변과 대변으로도 피가 나온다. 김 교수는 "에볼라 바이러스가 건강한 세포를 계속 공격해 지혈이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지난 40여년간 에볼라 유행이 스물네 번 있었는데 서아프리카 열대 밀림, 오지에서만 발생했어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곳이죠. 먹을 게 없어 박쥐나 원숭이 같은 야생동물을 잡아먹다 보니 감염이 됐어요. 의료 시스템도 엉망이고요."
이 지역의 독특한 '장례 문화'도 에볼라 유행을 부추겼다고 지적했다. 에볼라 바이러스는 호흡기로는 전염되지 않고 '접촉'을 통해 감염되는 것이 특징이다. 환자는 물론 시체도 만지면 안 된다. 그러나 이 나라들에선 사람이 죽으면 시체를 깨끗이 씻어줄 뿐 아니라 남자는 면도를 해주고 여자는 머리를 땋아준다. 장례를 치른 사람이 바이러스에 감염돼 죽고, 또 장례를 치르고, 그러다 마을이 초토화된다.
"사람이 죽으면 결국 몸에 기생하던 바이러스도 죽어요. 인간이라는 숙주를 끊임없이 이용하려면 다 죽이지 말고 살려서 바이러스를 퍼뜨려야 하는데, 에볼라 바이러스가 멍청했던 거죠. 그런데 이번엔 바이러스가 영리하게 굴었는지 도시로 퍼졌어요. 인접 국가로 전파되면서 세계를 에볼라 공포에 몰아넣고 있어요. 반면 치사율은 많이 낮아져 현재 55% 정도입니다."
◇지구 반대편 바이러스도 안심할 수 없어
에볼라 바이러스가 두려운 이유는 백신이나 치료제가 없기 때문이다. 40년 전 등장했는데 여태까지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은 건 왜일까.
"아프리카 작은 마을에서 몇백명이 걸렸다 사라지곤 하니까 제약회사들이 관심을 갖지 않았어요. 그러다 10년 전쯤 미국 정부가 투자를 시작했어요. '생물 테러'에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거든요. 누군가 에볼라 바이러스를 뉴욕 지하철에 터트린다고 생각해보세요. 미국 국방부와 보건부가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돈을 댔고, 몇 가지가 동물실험에서 효과를 나타냈어요. 미국 감염자에게 투여됐다는 '지맵'이란 치료제도 그중 하납니다. 하지만 인체실험까지 모두 통과한 백신이나 치료제는 없습니다."
1796년 에드워드 제너가 천연두 백신을 개발하고, 1928년 알렉산더 플레밍이 항생제인 페니실린을 발견하면서 ‘감염병과의 전쟁’은 막을 내리는 듯했다. 인류의 평균수명도 80~90세로 늘었다. 그러나 전 세계 인구 사망 원인의 4분의 1은 여전히 ‘감염병’이 차지하고 있다.
“아프리카, 동남아 등 후진국을 중심으로 감염병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먼 나라 얘기가 아니에요. 지구 반대편에 있는 병도 하루이틀이면 비행기를 타고 우리나라에 닿을 수 있습니다. ‘신종 바이러스’도 급격히 늘고 있어요. 대부분 열대우림의 동물들이 몸속에 지니고 있는데, 사람들이 이런 곳을 자꾸 개발하고 탐험하면서 세상 밖으로 끄집어 내고 있어요. ‘신(新)감염병 시대’가 온 거죠.” 그는 이 같은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글로벌한 감염병 전문가를 양성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앞으로 3~6개월 정도 에볼라 유행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방역 시스템과 의료 수준을 고려하면 에볼라 바이러스가 국내에 유입돼 사망자가 대량 발생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전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미국이나 우리나라 같은 선진국이 도와주는 겁니다. 서아프리카에는 이미 큰불이 났고, 그 불을 스스로 끌 능력은 없어 보입니다. 옆 동네에 불났는데 구경만 하면 안 되겠죠? 그냥 두면 우리 집도 태울 수 있습니다. 국제 사회가 함께 힘을 모아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