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8/07 16:26:02
그러나 그의 사제 생활은 1년 1개월 만에 끝났다. 성리학의 나라인 조선에서 가톨릭을 믿는 것은 큰 죄였기 때문이다. 조선은 그를 '나라에 대한 반역죄'로 참수형에 처했다. 김대건 신부가 순교한 이 사건이 바로 '병오박해'(1846년)다. 천주교 신자들은 병오박해를 비롯해 '신유박해'(1801년), '기해박해'(1839년), '병인박해'(1866년) 등 네 차례의 큰 시련을 겪었다. 특히 병인박해 때는 최소 8000여 명의 신자가 목숨을 잃었다. 이 같은 탄압에도 가톨릭의 불꽃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김대건 생가를 지나 조금 걸으면 소나무 동산이 모습을 드러낸다. 어릴 적 김대건 신부가 뛰놀던 이곳엔 그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동상을 지나쳐 숲길을 따라 내려가니 배 모양의 커다란 건물이 보였다. '김대건 기념관'이다. 이영화 해설사는 "김 신부가 사제 서품을 받고 귀국할 때 탔던 배를 모델로 만든 기념관"이라고 설명했다. 규모가 크진 않지만, 김대건 신부의 업적과 한국 가톨릭의 지난 역사가 잘 정리돼 있었다.
조선 말 종교의 자유를 얻은 한국의 가톨릭은 꾸준히 성장했다. 1969년에는 김수환(1922~2009년) 대주교가 우리나라 최초의 추기경에 임명됐다. 1984년 요한 바오로 2세 방한 당시에는 여의도에서 103명의 한국인 순교자를 시성(성인으로 모심)했다. 짧게는 5년에서 수십 년이 걸리는 시성 절차를 100명 이상이 한 번에 통과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후 2006년에는 정진석(83세) 추기경을, 올해 초에는 염수정(71세) 추기경을 각각 배출해냈다.
한국과 가톨릭이 만난 지 230년. 가톨릭은 이제 개신교·불교에 이어 우리 국민 531만명(2012년 기준·교황청 발표)이 믿는 3대 종교로 뿌리내렸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번 방한을 통해 국내 사회복지시설을 방문하고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들을 미사에 초청하는 등 '사랑과 희생 그리고 봉사'라는 가톨릭의 정신을 몸소 보여줄 예정이다.
숫자로 보는 한국 가톨릭
1 교황이 베드로 대성전이 아닌 곳에서 시성식을 한 나라의 수.
3 우리나라 역대 추기경의 수. 故 김수환 추기경과 정진석 추기경·염수정 추기경이 있다.
5 한국은 아시아에서 필리핀·인도·인도네시아·베트남에 이어 가톨릭 신자가 다섯 번째로 많은 곳이다.
103 우리나라에서 모시고 있는 성인(聖人)의 수.
가볼 만한 가톨릭 유적지
서울 용산구에 있는 새남터 순교성지는 김대건 신부를 비롯해 최초의 외국인 순교자 주문모 신부 등 많은 성직자가 순교한 곳이다. 현재 새남터 순교성지에는 14명의 성인 유해가 모셔져 있다. 새남터 순교기념관에는 한국 가톨릭의 흔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자료가 다수 보관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