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과 치열하게 대립각을 세우고 영토를 키워나가는 데 전념했던 무왕과는 달리 그의 아들 문왕(3대)은 당나라에 화친의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그동안 많은 영토를 얻었소. 이제는 나라의 내실을 키워야 할 때이니 당나라로부터 앞선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또한 제도를 정비하여 나라를 평안케 하시오."
문왕의 명령으로 사신들은 수십 차례 당나라를 오가며 새로운 제도를 배워 왔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문왕은 당나라의 것을 본떠 '3성 6부제'라는 중앙 통치 기구를 만들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문왕은 군사 제도를 새롭게 정비하고, 불교를 적극 장려해 통치의 정신적 기반으로 삼았지요.
이렇게 나라가 안팎으로 견고하게 자리를 잡으면서 국력이 커지자 당나라도 더 이상 발해를 업신여기지 못했습니다. 이즈음부터 당나라는 발해 왕을 '군왕'에서 '국왕'으로 한 단계 높여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선왕(10대)은 땅을 더욱 넓혀서 서쪽으로는 요동 지방까지, 남쪽으로는 대동강 부근까지 뻗어나갔지요. 신라는 이런 발해의 팽창에 바짝 긴장한 채, 300리가 넘는 성을 쌓고 발해를 경계해야 했습니다. 이 무렵, 당나라는 발해를 '해동성국'이라고 불렀습니다. 바다 건너 가장 융성한 나라라는 뜻이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