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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한국사] 귀족만 누린 '태평성대', 백성의 삶은 힘들어지고…

2014/07/14 09:28:45

외국과의 교류도 활발해졌습니다. 특히 당나라에는 공부를 하러 가는 유학생과 승려,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상인들이 오고 갔습니다. 그런 덕분에 신라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신라방)도 생겨났고, 이들을 관리하고 감독하는 관청(신라소)과 또한 신라 사람들을 위한 절(신라원)도 생겨났을 정도였습니다. 승려 혜초는 중국을 지나 인도와 중앙아시아를 순례하기도 했지요.

전쟁 때는 백제를 도왔던 일본과도 무역이 다시 시작되었고, 지구 저편 서쪽에서 온 이슬람 상인들의 물건들도 신라에 들어왔습니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무역항이었던 '울산항'을 통해 향료나 공작 깃털, 에메랄드와 같은 물건들이 거래됐어요. 신라 사람들이 처음 보는 아주 진귀한 것들이었지요.

이 같은 태평성대 속에서 가장 큰 혜택을 본 사람들은 귀족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저택의 지붕을 기와로 덮고 정원에는 연못을 파기도 했어요. 궁궐 못지않게 크고 호화로웠는데 심지어 건물을 금으로 치장한 집도 있었지요. 이런 집을 일컬어 '금입택'이라고 불렀습니다. 금성에만 40채가 넘는 금입택이 있었답니다. 귀족들이 거느리는 노비는 보통 수백 명이 넘었지요. 귀족들은 저마다 당나라와 서역에서 수입한 장식을 하고 다녔습니다. 때로는 그것이 지나쳐서 흥덕왕은 사치품을 사용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리기도 할 정도였습니다.

그에 비해 백성들의 생활은 나아진 것도 없이 고달프기만 했습니다. 오로지 농사일에만 매달렸던 농민들은 가을이 되면 수확의 상당량을 세금으로 바쳐야 했습니다. 수해나 가뭄으로 세금을 내지 못하면 빚을 질 수밖에 없었고, 그 빚을 갚지 못하면 노비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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