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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한국사] 성골 출신의 덕만 공주, '선덕 여왕' 되다

2014/06/16 09:22:42

'골'은 왕족들의 계급으로, 성골과 진골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성골이었던 진평왕이 세상을 떠나자 신라의 왕족과 귀족들은 왕위 계승 문제를 놓고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더 이상 성골 남자가 없으니, 진골에서 왕이 나와야 합니다." "무슨 말씀이오? 성골 남자는 없지만 성골 여자가 있지 않소? 듣자 하니 덕만 공주의 지혜로움은 따를 자가 없더이다."

덕만 공주가 영특하다는 소문은 진작부터 떠돌고 있던 터였습니다. "덕만 공주가 당나라 태종이 보낸 모란 꽃 그림에 나비가 없자 그 꽃에 향기가 없다는 것을 눈치채고 '이 그림은 내가 여자인 것을 비웃는 것이다'라고 말했다는군." "뿐만 아니에요. 한번은 영묘사 앞 연못에 개구리의 울음소리가 이상하다면서 군사를 보내라고 해 가 보니 백제군이 숨어 있더랍니다."

이 소문이 사실인지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마침내 덕만 공주는 신라 왕실의 첫 번째 여왕 '선덕 여왕'이 됐습니다. 하지만 선덕 여왕에게는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여성이 임금이 됐다는 것에 불만을 품은 귀족들이 많았기 때문이었지요. 이것을 빌미로 비담이라는 재상이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고요. 그래서 왕의 권위를 세우고 불법(佛法)으로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황룡사 9층탑을 거대하게 짓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라는 선덕 여왕 때에 이르러 끊임없이 위축돼 갔습니다. 백제의 계속된 공격으로 서쪽 변경의 성 다수를 잃었고, 이어 요충지인 대야성(경남 합천)까지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진흥왕 때 최대의 영토를 차지하며 한반도 주인 노릇을 했던 신라는 점점 더 위기에 빠지고 있었던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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