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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한국사] 고구려·백제 꺾고 한강 차지… 청년 무예조직 '화랑도' 만들어

2014/06/09 09:38:53

'만약 한강 유역을 모두 차지할 수 있다면, 비옥한 땅과 곡식을 얻는 것은 물론 곧장 바다로 나갈 수 있는 길이 열릴 것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중국 땅 여러 나라와도 교류할 수 있고, 이는 신라에 얼마나 큰 이익인가?'

고심한 끝에 진흥왕은 신라군을 보내 한강의 백제군을 공격하게 했습니다. 이 전투에서 신라는 김무력(김유신의 할아버지) 장군의 큰 활약으로 한강의 하류마저 손에 넣었습니다. 백제의 성왕은 이에 앙갚음하기 위해 관산성(충북 옥천)을 공격하는 등 뒤늦게 손을 썼지만, 김무력 장군에게 붙잡혀 죽임을 당하고 말았지요. 이로써 신라가 세 번째로 한강의 주인이 됐습니다.

하지만 진흥왕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대가야를 공격해 낙동강 유역 거의 전부를 손에 넣었고, 그 여세를 몰아 동해안을 따라 영흥만까지 진출했습니다.

자신감에 찬 진흥왕은 자신이 정복한 지역을 직접 돌아다니며 비를 세웠습니다. 북한산비, 마운령비, 황초령비, 창령비 등 모두 네 곳이었지요. 이 비를 '진흥왕 순수비'라고 불렀습니다. 북한산비에, '신하와 백성들의 수고를 격려하고, 충성된 자들에게 상을 내리고자 친히 돌아보노라'라고 썼고, 황초령비에는 '내가 따로 정복한 지역의 사람들도 원래 신라 사람들과 똑같이 대우하겠노라'라고 썼습니다. 나라를 더욱 강성하게 만들겠다는 진흥왕의 노력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땅은 넓혔으나, 나라를 다스릴 지혜로운 신하와 용맹하게 적과 싸울 장수가 부족하구나. 어찌하면 좋을까?'

그런 생각 끝에 진흥왕은 지혜와 학식, 그리고 튼튼한 체력을 가진 젊은이들을 뽑아 수련을 시키기로 했어요. 이전부터 신라에는 청년들이 산과 계곡을 누비며 심신을 수련하는 풍습이 있던 터였습니다. 이것을 본떠 진흥왕은 우두머리를 정하고, 그 아래에 청년들을 모이게 해 무예를 연마하고 학문을 익히게 했지요. 이 단체를 화랑도라 불렀습니다.

◇화랑의 활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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