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

소규모 보습학원 2만여곳 “알아서 안전 점검해라!” 소방법 적용은 900곳뿐

2014/05/26 11:55:19

지난 1월, 다니던 회사를 10년 만에 그만두고 서울 노원구 상계동에 수학 ‘학원’을 차린 문주성(가명·41)씨는 “학원을 직접 차려보니 학원이 결코 안전한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고 말했다. 우선 ‘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100㎡(약 30평)인 문씨의 학원은 관할 교육청에 신고하고 인가를 받아야 운영할 수 있다.

서울시 조례에 따르면 학원으로 등록하기 위해서는 보습·논술학원의 경우 70㎡(약 21평) 이상, 입시학원은 660㎡(약 200평) 이상, 외국어학원은 150㎡(약 45평) 이상이 돼야 한다. 교과 과정 중의 보통 교과목(국어·수학 등)을 가르치는 문씨의 학원은 보습학원으로 인정돼 허가받을 수 있다.

대부분의 학원은 설립하면서 인테리어 공사를 새로 한다. 문씨의 학원은 기존에 음식점으로 쓰이던 공간이기 때문에 ‘강의실’을 새로 만들어야 했다. 강의실 2개, 교무실 1개를 만들면서 가장 신경 써야 할 부분은 소방법. 관할 소방서에서 발급하는 ‘소방·방화시설 완비 증명서’를 받지 않으면 운영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씨는 “학원 선배들이 얘기하기를 소방법이 가장 신경 쓰인다고 하던데, 의외로 생각보다 쉽게 넘어갔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문씨 학원에서 반드시 갖춰야 하는 소방시설은 강의실마다 배치해야 하는 소화기, 비상구 유도등 하나, 완강기 하나가 전부였다. “인테리어 업자한테 스프링클러나 방화문 같은 걸 설치해야 하는지 물어봤는데 ‘작은 학원에서는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혹시나 싶어 소방서에도 물어 보니 ‘하면 좋지만, 법률상 꼭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는 답변이 왔습니다.”

학원의 면적이 570㎡(약 172평)가 넘어가면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다중이용업소’로 분류돼 소방법이 엄격하게 적용된다. 간이 스프링클러나 비상벨·화재탐지기를 설치해야 하고, 비상구 문이 열리는 방향도 바깥쪽으로 열리게 해야 한다. 복도도 120㎝ 이상이어야 하고 가로 50㎝, 세로 50㎝ 넘는 창문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각종 자재에 방염처리도 돼 있어야 하지만, 소규모 학원에는 이런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

“사실 기왕 시작하는 학원이니 스프링클러도 설치하고 방염처리도 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하나에 10만원은 넘는다는 스프링클러나 방염재 가격을 생각하다 보니 ‘위법도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씨는 “보험은 들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몇몇 학부모의 문의가 있어서 곧 알아볼 예정”이라고 대답했다.

안전문제가 우리 사회의 최우선 해결 과제로 떠오르면서 한동안 안전의 사각지대에 있던 학원도 점검 대상에 오르기 시작했다. 지난 3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산하 참교육연구소가 초등학생 195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학생의 60.6%가 방과 후 2시간 이상을 학원에서 보낸다고 대답했다. 교육부가 발표한 2012년 사교육비 및 사교육의식 조사결과를 보면 초등학생의 주당 사교육 시간은 6.9시간이다. 중학생은 6.6시간, 고등학생은 4.4시간이다. 학교나 가정만큼이나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학원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학원은 아이들에게 결코 안전한 곳이 아니다. 지난 5월 7일에는 서울 서대문구, 4월 4일에는 전남 무안, 3월 15일에는 부산 동래구, 3월 9일에는 경기도 의정부시, 1월 14일에는 서울 마포구, 1월 11일과 1월 6일에는 인천 계양구와 경기도 고양시 학원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벌써 13년이 지난 경기도 광주시 예지학원 참사는 아직도 학원의 소방안전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사건이다. 2001년 5월 16일 예지학원 건물에서 불이 붙었다. 400만원의 재산피해를 내고, 5층 창고 115.5㎡를 태우는 크지 않은 화재였지만 무려 10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희생자들은 모두 불이 난 건물 옥상에 있는 가건물에 있었다. 불이 계단 통로와 옥상 사이로 번지면서 희생자를 키운 것이다.

소방시설을 제대로 갖추지도 못한 데다 소방 당국의 점검도 허술했던 이 참사 이후로 학원에 대한 소방안전 인식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이 “여전히 갈 길이 멀다”고 지적하는 이유 중 하나는 학원 소방안전의 사각지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학원의 시설 기준 면적이 570㎡(약 172평) 이상이라 다중이용시설로 분류된 학원은 엄격한 소방법을 적용받는다. 그러나 이런 규모의 학원이 얼마나 될까.

서울시는 학원의 규모에 따라 부르는 이름을 달리하고 있다. 외국어학원, 예체능학원을 제외하고 교과 과목을 가르치는 학원 중에 ‘입시학원’이라고 부를 수 있으려면 학원 면적이 최소한 660㎡(약 200평)이 넘어야 한다. 그런데 서울시 교육청에 따르면 지난 4월 말을 기준으로 660㎡가 넘는 입시학원 수는 50여개. 그보다 작은 면적은 ‘보습학원’으로 분류되는데, 이 보습학원의 숫자는 7400개가 넘는다. 이마저도 다른 지역에서는 60㎡만 넘으면 입시학원, 보습학원 가릴 것 없이 세울 수 있다. 다시 말해 다중이용시설로 분류돼 엄격한 소방법을 적용받는 학원의 수가 얼마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