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쪽을 평정한 광개토대왕은 곧바로 군사를 돌려 북쪽으로 향했습니다. 먼저 광개토대왕은 고구려 국경 부근에서 약탈을 일삼던 비려족(거란의 한 종족)과 숙신족(말갈족)을 차례로 정벌했습니다. 이때 광개토대왕은 비려족에게서 군사와 백성 500여 명을 포로로 잡아 왔고, 그들에게 납치됐던 고구려 백성 1만여 명을 구출해 냈습니다. 또한 숙신족으로부터 고구려에 해마다 조공을 바치기로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400년에는 신라를 침략한 왜의 해적 무리를 소탕하기 위해, 광개토대왕은 4만의 군사를 보내 도움을 줬습니다. 이때 고구려군은 왜의 군사들을 신라 땅에서 내쫓은 것은 물론, 가야까지 도망친 왜의 뒤를 쫓아 궤멸시켰지요. 그야말로 고구려군은 천하무적이었지요. 여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어요.
우선 고구려 사람들은 평상시에는 사냥으로 전투 능력을 키웠습니다. 소수림왕은 사냥을 적극 장려하기도 했어요. 뿐만 아니라 쇠를 다루는 대장장이나 무기를 만드는 기술자를 우대해 주위의 여러 나라보다 성능 좋고 다양한 무기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가 쇠뿔을 이어 만들었다는 '맥궁'이었어요. 맥궁은 다른 나라 병사들도 혀를 내두를 만큼 활채의 탄력이 아주 좋아서 파괴력이 엄청났지요. 웬만한 갑옷은 퍽퍽 뚫었으니까요. 물론 화살촉도 단순히 뾰족한 것부터, 적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줄 수 있는 도끼날 모양의 것까지 다양하게 갖춰져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구려 병사들은 말을 달리며 뒤로 돌아서 화살을 쏘는 등 말과 활을 다루는 솜씨가 일품이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광개토대왕의 전략과 전술 또한 뛰어났습니다. 광개토대왕은 군사를 그 능력과 효율에 따라 보병과 기병, 궁수는 물론, 철갑 기병 부대 등으로 편성하여 전투력을 극대화했답니다. 특히 고구려 군사의 위용을 자랑하던 철갑 기병은 온몸을 미늘 갑옷으로 감싼 채 전투에 나섰어요. 쇠로 만든 투구를 썼고, 신발 바닥에도 날카로운 쇠못을 붙였지요. 물론 말에게도 투구와 갑옷을 입혀 상처가 나지 않도록 했고요. 이들은 전투 때마다 가장 앞에 서서 긴 창을 들고 적진을 허물며 전투를 이끌었습니다. 이 막강한 군사를 이끌고 광개토대왕은 북쪽에서 일어난 후연마저 격파하고, 마침내 요서 지방까지 손에 넣었습니다. 이어 동부여로 진격해 64개의 성과 1400여 개의 마을도 빼앗았습니다. 이렇게 약 20여 년을 전쟁터에서 살면서, 광개토대왕은 영토를 혼춘 동쪽, 요하강 서쪽, 한강 남쪽, 흑룡강 북쪽까지 넓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