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기는 백제
근초고왕이 세상을 떠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백제에는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안으로는 진사(16대)와 아신(17대)이 왕위를 두고 다툼을 벌였고, 바깥으로는 막강한 기병을 앞세운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이 험준한 요새로 알려진 관미성마저 무너뜨렸습니다. 그러고는 마침내 왕성 가까이까지 들이닥쳤습니다. 이때 아신왕은 포로 1000명과 베 1000필을 바치고 굴욕적인 맹세를 해야 했지요.
물론 아신왕은 호시탐탐 고구려를 공격할 기회를 노렸지만, 기회는 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광개토대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장수왕(20대)은 고구려 도읍을 평양성으로 옮기더니, 끊임없이 백제의 국경을 침범해 왔습니다. 이런 중에 백제의 신하들은 어떻게 고구려의 공격을 막아 낼지를 두고 잦은 다툼을 벌였고, 그 탓에 왕실의 권위도 땅에 떨어졌습니다.
이에 백제의 개로왕(21대)은 신라와 왜에 사신을 보내 외교 관계를 돈독히 했어요. 또 한편으로는 궁궐을 새로 짓고 선왕의 무덤을 보수하여 왕실의 권위를 높이려 애썼지요. 하지만 너무 무리하게 공사를 강행한 나머지, 민심을 잃고 오히려 국력을 낭비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이를 눈치 챈 고구려의 장수왕은 한성을 공격했습니다. 백제는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한성은 쑥대밭이 되고 말았지요. 개로왕마저 고구려군에 붙잡혀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한강 유역을 잃은 백제는 도읍을 웅진 충남 공주으로 옮겨야 했습니다. 이때부터 백제는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나라를 바로잡을 틈도 없이 문주왕(22대)은 신하 해구에 의해 죽임을 당했고, 뒤이어 왕위에 오른 삼근왕 때에도 혼란이 계속되었지요.
동성왕(24대)이 중국의 남제에 사신을 보내고, 신라와는 결혼 동맹을 맺으며 나라를 안정시키려 했습니다. 그렇지만, 결국 그 자신도 귀족들에게 살해당하고 말았지요. 백제의 혼란은 계속됐습니다.
◇백제의 부활과 좌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