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재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있는 서울고는 1980년 종로구 신문로에서 이전해 왔다. 당시 서울고 교사였던 손경수 전 한국교원대 교수는 “갑자기 이전하라고 하니 반대가 매우 심했다”고 말했다. 학부모는 통학거리가 멀어진다는 이유로, 동창들은 학교의 역사가 사라진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손씨는 “동창들을 설득할 때는 학교 내에 있는 여러 가지 전통 유적들을 다 가지고 간다고 말하면서 정신을 그대로 이어간다는 것을 강조했다”며 “워낙 반대가 심하니까 학생들을 달래기 위해 종로에 있던 교사보다 더 좋은 교사를 지어주라는 얘기가 나왔다”고 증언했다. 그래서 9만㎡(약 2만7000평)의 너른 부지에 1년6개월 만에 새 학교가 지어졌다. 손씨는 “처음 1년은 아무것도 없으니 불만이 있었지만 나중에는 건물 자체를 워낙 잘 지어놓고 서울고를 위해 지하철 노선도 만들어 주고 나니 나중에는 ‘차라리 잘됐다’는 반응이 생겼다”고 말했다.
1978년 종로구 원서동(현 현대그룹 사옥 자리)에서 강남구 대치동으로 이전한 휘문고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당시 교장이었던 김태식씨는 “학교를 이전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며 “어떻게 보면 마지못해 이전한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휘문고는 늘어나는 학생 수로 교실이 부족할 지경이었다. 휘문고가 이전할 당시에만 해도 강남 지역 환경은 열악한 수준이었다. 김태식씨는 “학교가 허허벌판에 덩그러니 있고 인근에는 은마아파트 등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보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면서 “교통, 위생, 환경 면에서 수업에 지장이 있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강남으로 이전한 것이 잘한 일인 것 같다”며 “다른 학교들도 ‘우리도 강남으로 가야겠다’고 해서 많이 왔다”고 말했다.
이른바 명문 고등학교의 타 지역 이전이 성공적 결과를 낳은 것을 보고 자발적으로 이전해 가는 학교도 생겼다. 1986년 동덕여고는 동대문구 창신동에서 서초구 방배동으로 이전을 결정했다. 당시 동덕여고 교사였던 이중호씨는 “학교 건물이 노후화됐고 강남이 개발되면서 종로구가 공동화되는 현상이 일어나 이전했다”고 말했다. 197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이른바 1차 ‘스쿨런’은 강남 지역이 대부분 개발되면서 거의 완료됐다.
그리고 30년 후 다시 ‘스쿨런’ 조짐이 보이고 있다. 최근에 강북 지역에 남아 있는 중앙고, 이화여고 등은 자율고로 지정돼 오히려 입학 지원자가 늘었다. 그러나 일반고 입장에서는 학교의 미래가 걱정될 수밖에 없다. 익명을 요구한 종로구의 한 고등학교 교감은 “강남 지역에 비해 명문대 진학률이 떨어지는 것은 확실한 사실”이라면서 “얼마 전 학교 운영위원회에서 우리도 이전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다”고 말했다.
초등학교는 조금 다른 상황이다. 서울 종로구 재동초교는 지난해 입학생 수가 42명에 불과했다. 교동초교의 입학생 수는 21명이었다. 종로구 전체 초등학교 입학생 수 평균은 70명. 서울시 전체 평균의 124명에 비해 한참 모자란 수치다. 종로구 숭신초교가 2015년 성동구 왕십리 뉴타운으로 이전할 예정이지만 초등학교의 경우 이전을 쉽게 결정하지 않고 있다. 종로구 내 한 초등학교 교감은 “학생 수가 적은 것이 학교 경쟁력 측면에서 오히려 더 주목을 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시 전체 초등학교 교사 1인당 학생 수는 평균 19.7명이다. 그러나 종로구 평균은 16명, 일부 학교는 10명이 안 되는 경우도 있다. “더 섬세한 돌봄을 원하는 요즘 학부모 중에는 일부러 주소를 이전해 종로구 내 초등학교로 입학시키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 이 교감의 얘기다.
중고등학교로 가면 이전은 학교의 생존 문제가 된다. 경신고는 처음 이전 계획을 발표했을 때 총동문회에서 긴급회의를 개최해 항의의 뜻을 전달했다. 지승룡 총동문회장은 “동문회와 상의 없이 교육청에 이전 신청을 한 것에 대해 동문들이 항의했던 것”이라며 “학교 관계자들과 모여 모교 이전에 대한 장단점을 따진 결과 기본적으로는 찬성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지 회장은 “학교 부지가 축소되는 등의 단점에도 불구하고 첨단시설을 건축할 수 있고, 무엇보다 마지막 강남 개발 지역인 곳에서 우수한 학생들이 유입될 거라 예상할 수 있어 장기적 관점에서 찬성 입장으로 돌아섰다”고 설명했다.
최근 진행되는 스쿨런은 대부분 동문과 학교, 학부모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이전 사업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쉽게 성사되지는 못한다. 부지 매각과 매입에 따른 비용 문제 때문이다. 경신중고등학교가 이전을 포기한 것도 혜화동 학교 부지의 매각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서이다. 계성여고는 서울시가 길음뉴타운 내 부지를 ‘도시재정비촉진을위한특별법’에 의해 감정평가액 기준이 아닌 조성원가 기준으로 잡았기 때문에 성사된 경우다.
이 때문에 지난 1월 서울시는 도시계획조례 일부 개정안을 통해 학교 이적지에 대한 건폐율과 용적률에 대한 제한을 낮춰 사립 고등학교 부지 매각이 쉽게 조정을 했다. 이 개정안을 발의한 최보선 서울시의회 의원은 “학교 재배치 정책이 훨씬 더 적극적으로 추진될 것”이라면서 앞으로 몇 년간은 학교 이전이 다시 ‘붐’을 이루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